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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광화문연가, 김택진의 꿈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2.11.27 17:53
  • 수정 2012.11.2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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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자는 아름답지만, 꿈을 실천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올바른 삶의 가치를 논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사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게임계에는 유독 꿈을 꾸는 사람이 많다. 그꿈의 크고 작음을 떠나 꿈을 실천하며 산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 게임계에서 이런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누구라도 주저 없이 김택진 대표를 생각할 것이다. 그의 꿈이 궁금했다. 수년전 서울대에서 열렸던 초청강연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토로했던 인생 스토리를 엮은 저서 ‘공학도에서 게임산업CEO까지’란 책을 다시 들춰봤다.

달리기와 야구를 좋아하던 똘똘한 학생 김택진은 반도체 디자인을 하고 싶어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한다. 1학년 때 처음 애플컴퓨터를 접하면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에 끌리기 시작했다. 취미가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과 공부보다는 컴퓨터동아리 활동에 주력했다. 같은 과 친구들은 “너 그거 해서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겠냐”며 핀잔을 줬다.

그러나 그런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리만큼 프로그래밍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었다. 2학년 무렵 유닉스 프로그램과 처음 접하게 되고, 이 소스를 기반으로 프로그래밍을 짜면서 게임에 점점 다가갔다. 당시 텍스트 기반의 ‘로그’와 ‘넷핵’이라는 게임을 즐기면서 미래의 꿈을 차근히 그려갔다.

내 인생을 게임에 걸어봐야겠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세상에 공헌하겠다는 김택진의 철학은 점점 확고해졌다. 당시만해도 컴퓨터에서 한글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도 PC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결심한다.

컴퓨터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이찬진 등과 함께 ‘아래아 한글’을 개발해냈고 1989년 봄,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세상에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시장 구조에 맞서 자국의 언어 소프트웨어를 내놓은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 중심에 김택진이 있었다.

한글은 전국민적인 소프트웨어가 됐으나, 컴맹이 즐비하던 당시엔 한글을 제대로 입력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김택진은 ‘한메타자교사’란 프로그램을 짜면서, 위에서 떨어지는 단어가 바닥에 닿기 전에 빨리 입력해 지워나가는 ‘베네치아’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이는 아마도 대중들에게 한글 타자법을 가르치기 위해 게임을 활용한 국내 최초의 게이미피케이션의 사례였을 지도 모른다. 1992년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는 미국 보스톤의 소프트웨어 연구소로 파견을 나간다. 당시 현지 벤처기업이 만든 TCP/IP 기반의 인터넷을 처음 접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국내에서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PC통신도 버벅이던 시절이라 ‘한글이 가능한 인터넷’을 구상하고 웹 상에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짜보기 시작했다. 매우 실험적인 시도들이 이어졌다. 지금은 너무 보편화돼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의 ‘댓글 시스템’도 그의 작품이다. 대중들에게 보다 손쉽게 인터넷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한발 한발 꿈의 계단을 오르던 1997년, 인터넷 발전에 기여해보겠다는 목표로 엔씨소프트를 세웠다. 인터넷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문화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인터넷은 정보망이라는 시각이 강했지만, 그는 ‘엔터테인먼트망’이라 고집했다. 한편으로는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니까 수출하는 사람이 애국자”란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랐다.

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의 창업에 한 부분을 차지했다. 김택진은 언제나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을 때, 가장 짜릿함을 느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가장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가 게임이라는 것을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 결국 리니지 시리즈, 아이온, 블레이드 & 소울 등을 통해 전세계인들에게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더불어 대한민국을 글로벌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게임강국으로 키워냈다. 오랜 꿈을 실천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그가 또 어떤 꿈을 꾸고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게임을 통해 세상을 즐겁게하겠다는 일관된 의지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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