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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광화문연가, 당나귀의 마음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2.12.0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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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을 팔아 생계를 연명하는 노인이 있었다. 그날도 당나귀의 등에 소금을 잔뜩 싣고 장터로 향하고 있었다. 당나귀는 짐이 너무 무거워 땀을 뻘뻘 흘렸다. 장터로 가는 도중, 냇물의 작은 돌다리를 건너다 그만 당나귀는 미끄러져 쓰러지고 말았다. 등에 진 소금은 물에 흠뻑 젖어 반쯤 녹아버렸다. 당나귀는 생각했다. “희안하게도 물에 빠지면, 짐이 가벼워지는구나”

다음날에도 당나귀는 냇물에 이르자, 일부러 쓰러져 등에 진 소금을 반쯤은 물에 녹여버렸다. 소금장수 노인은 생각했다. “당나귀 이 녀석, 자꾸 꼼수를 쓰는구나... 버릇을 고쳐주마” 노인은 다음날, 일부러 소금대신 솜을 당나귀의 등에 한가득 실었다. 당나귀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따라 짐이 가볍네, 그래도 더 가벼워지려면 냇가에서 쓰러지는 게 낫겠지...”

당나귀는 이날도 냇물에 이르자, 또 다시 쓰러졌다. 짐이 날아갈 듯 가벼워질 거라 생각했지만, 다리가 휘청일 정도로 짐이 무거워져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걸어갔다. 어릴 적 한번쯤 읽었던 ‘당나귀와 소금장수’라는 이야기다. 요즘 업계가 돌아가는 걸 보면, 많은 회사들이 당나귀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 많은 유저를 끌어들이기 위해 등장한 방식이 ‘기본 무료 아이템 과금(프리투플레이)’의 모델이다. 고심 끝에 내놓은 비즈니스 전략인 것은 맞지만, 어쩌면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유저들이 이 방식에 서서히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좀처럼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지갑이 자꾸만 열리고 있었다.

우연히 냇물에 빠지고나서 짐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낀 당나귀의 마음과 같았을 듯하다. 뒤를 이어 많은 회사들이 프리투플레이 모델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유료 게임들은 일부 명맥만 유지할 정도 수준으로 시장에서 점점 자취를 감춰갔다.

일단 공짜로 플레이해보고, 더 재밌게 즐기려면 아이템을 사라는 전략은 용돈이 넉넉지 않은 게이머에게나 돌파구를 찾지못해 방황하던 게임회사들에게나 굿아이디어일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델이 정착되자 돈을 주고 게임을 하는 건 바보같은 짓이라 인식될 정도가 됐다.

PC온라인게임에서 시작된 프리투플레이 모델은 모바일게임에도 고스란히 적용돼 가장 대중적인 과금 형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다. 최근 인기를 모았던, 어느 게임의 경우 실제로 돈을 지불한 비율은 전체 유저의 0.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프리투플레이 모델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정도를 지키지 못한 원인도 크다. 게임 내에서 돈을 쓰면, 누구나 단번에 강해질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져 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노비가 족보를 사서 양반 행세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칙 행위가 난무했던 것이다. 게임회사는 최소한, 게임의 전반적인 기반을 뒤흔드는 아이템 만큼은 내놓지 말았어야했다.

당초에 프리투플레이 모델은 게임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외모 가꾸기 등의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이뤄졌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끝까지 지켜내야할 마지노선을 넘게 되면서 돈이면 뭐든 가능하다는 인간세상의 행태와 다를 바 없는 구조로 변질된 것이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특히 첨단 IT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게임’은 기술적으로나 비즈니스 형태로나 더욱 스피디한 트렌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냇가에서 자꾸 넘어지는 당나귀가 결국은 솜을 잔뜩 싣게된 것처럼 유저들은 소금장수보다도 몇배는 더 치밀하다. 앞으로 또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게임회사들은 당나귀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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