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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광화문연가, 할리와 준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2.12.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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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있는 할리데이비슨 본사에 가면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고 한다. 케이지(Cage) 주차 금지, 오토바이만 주차 가능! 이라는 표지판이 있기 때문이다. 케이지란 오토바이 마니아들끼리 자동차를 표현하는 그들만의 속어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전용 리무진이 주차장에 들어와도, 주차관리인으로부터 건물 뒤편으로 인도될 정도로 확고한 규정인 듯하다. 대부분의 회사라면, 주차장의 가장 편한 자리는 고위 경영진들의 전용 공간으로 비워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할리데이비슨은 그곳을 자신들의 고객에게 내어주면서,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 회사는 1980년대초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중대형 모터사이클 시장에 주력하면서 전세계에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들을 양산했다. 1986년부터 약 15년간 연평균 두자리수의 성장을 지속했다. 2000년에는 전세계 모터사이클시장을 단단히 쥐고 있던 일본의 ‘혼다’와 ‘야마하’를 끌어내리고, Top에 올랐다.

당시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며 사상 유례없는 구조조정을 감행하던 때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의 제조회사들이 높은 급여와 너무 많은 복지 혜택 때문에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할리데이비슨은 과거와 다름없이 업계 최고 수준의 혜택을 직원들에게 보장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사의 제품을 타는 오토바이족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해냈다. 그 결과 충성도 높은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들을 자사 오토바이를 세상에 널리 선전해주는 홍보맨 집단으로 만들어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의 모임인 호그(HOG : Harley Owners Group)다. 이 조직은 고객간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욕구와 회사에 대한 거침없는 제안을 쏟아냈다. 호그의 조직원은 현재 전세계에 1천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Xbox가 예상 외의 큰 성적을 거두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진은 이를 만들어낸 핵심 개발진들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겼다. 애플의 아이팟에 대항해, 이를 능가하는 최고의 디지털 미디어 플레이어를 만들자는 것. 산고 끝에 2006년 11월, 아이팟보다 조금 두꺼운 사각형의 준(Zune)이 세상에 나왔다.

애플의 아이팟이 출시 후 1년반 동안 8천 4백만대를 판매한 반면, 준은 같은 기간 동안 고작 2백만대를 파는 데 그치고 말았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니와 닌텐도를 상대로 한 게임기 시장에서는 의미있는 성공을 거뒀지만, 애플과의 디지털 미디어 플레이어 전쟁에서는 참패한 셈이다.

게임 시장에서 Xbox라는 히트 게임 머신을 만들어낸 개발팀이 준(Zune)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하고만 원인은 무엇일까. 스탠퍼드대의 데브 팻나이크 교수가 쓴 ‘와이어드’라는 책에서 밝혀진 당시 개발팀원의 발언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들은 당시, 누구를 위해서 준을 개발하는 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Xbox를 개발할 때는 우리 자신이 게임을 좋아하는 타깃(게이머)이었지만 준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당시 Xbox개발팀은 게이머들과 적절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치열한 차세대 게임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게이머들과의 공감대 형성에만 취해 있었던 개발팀은 디지털 미디어 플레이어인 준(Zune)을 사용하게 될 타깃이 어떤 소비자층일지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할리데이비슨을 추종하는 ‘호그’와 같은 집단이 준(Zune)에도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애플의 아이팟은 지금과 같은 정상의 자리에 쉽게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우리 업계에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경영적 측면에서 단순히 버는 것보다 쓰는 돈이 많이 나가게 되니 불가피한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할리데이비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감원이 기업 회생의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직원들을 다독이고 고객들과 좀 더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것이 우리 게임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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