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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자와 원숭이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3.04.25 18:33
  • 수정 2013.04.2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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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은 어떤 포지션에 놔둬도 이를 멋지게 소화해내는 멀티플레이어다.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과 불굴의 투지를 무기로 모든 포지션에서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는 박지성은 사회적으로도 각광받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우리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 속에서 박지성 같은 멀티플레이어가 되기를 요구받으며 살고 있다. 특히나 하룻밤 자고나면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생겨나는 요즘의 우리 업계는 더욱 그런 인재들을 찾고, 한솥밥을 먹는 직원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원한다. 게다가 누구보다 먼저 결과물을 내야하는 신속함까지 요구된다.

미국의 공장에는 ‘프린지 워크’라는 게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활용되지 않는 일종의 작업 관행이다.
작업의 교대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 미국인들은 아무리 바쁜 작업이라도 바로 멈추고 마구 흩어져 있는 현장과 자신이 사용하던 공구들을 그대로 놔둔 채 나가버린다.
먼저 다른 직원들이 일하다가 나간 작업장에 다음 순번의 직원이 들어가 작업을 하게 되면  흩어져 있는 환경 탓에 자신의 페이스대로 일을 하기까지 적응 시간이 꽤 걸리기 마련이다. 이런 비효율적인 부분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교대 시간에 현장을 정리하는 작업이 ‘프린지 워크’다. 이는 일과 휴식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미국인의 의식구조가 업무에도 그대로 반영된 관행인 셈이다.
 
 육식을 하는 사자는 배가 고프면 최선을 다해 먹잇감을 쫓아가 결국 잡아 먹는다. 그러나 며칠동안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제 아무리 구미가 당기는 먹잇감이 옆에 와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일과 휴식의 경계선이 뚜렷한 서양 사람을 사자의 성향에 가깝다고 본다.
 반면, 초식 동물인 원숭이는 하루종일 먹이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고, 이동하면서도 먹고, 다른 짐승을 피해다니고, 또 도망치면서 동료 원숭이와 먹이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등 한번에  여러 행동을 동시에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온 한국인은 변화무쌍한 날씨만큼이나 한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서양인을 사자에 비유한다면 한국인은 그래서 원숭이의 성향과 닮아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원숭이의 성향을 가져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과 사자의 성향 때문에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것 중 어느 쪽이 효율적일까. 미국의 연방항공우주국 연구팀이 오래전 행한 조사에 따르면, 원숭이 성향의 업무 처리 스타일이 사자형에 비해 효율면에서 최대 40%의 손실을 가져온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어떤 업무든, 하던 일을 자꾸 바꿔가면서 하는 것은 업무적으로 볼 때 큰 손실인 셈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선 무슨 일이든 빨리해내야만 인정받는 문화가 아직도 팽배해 있다. 빨리 자고 빨리 일어나며, 빨리 먹고 빨리 나가서 일을 빨리 처리하라고 강요받는다. 서두름을 문화로 친다면 우리는 종주국이라 할 만하다. 이와는 정반대로 터키인들은 뭐든지 ‘야와시 야와시’라고 말하는데, 이는 ‘천천히 천천히’라는 의미다. 우리와는 대조되는 느림 문화의 표출인 셈이다. 오늘 해야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게 한국 사회에서는 눈에 날 일이지만, 터키인들에겐 오늘 하지 못한 일을 내일 하는 것이 당연스레 받아들여진다. 고쳐지지 않는 한국의 고질병중 하나가 바로 빨리빨리 문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이처럼 결과를 빨리 내려는 성향 때문에 달성하려는 목표를 위해 필요한 절차나 규정, 안전 수칙이 무시되고 눈가리고 아웅하려 들다가 결국 사고가 나는 것이다.

출시일에 쫓겨 몇명 되지 않는 개발자가 밤샘하며 개발부터 마케팅, 홍보까지 전부 소화해내는 기특한(?) 장면을 얼마 전 목격했다.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빨리빨리 원숭이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 게임이 승승장구하며 오래갈 수 있을 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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