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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껌 하나를 만들어도…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3.05.13 18:57
  • 수정 2013.05.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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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한 경상도 청년이 풍운의 꿈을 안고 일본행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그는 도쿄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우유배달을 했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정확한 시간에 우유를 가져다주는 배달부로 소문이 나자, 고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주경야독 끝에 와세다대 이공학부에 입학했다.
 청년의 성실성을 눈여겨봐왔던 전당포 주인은 그에게 자본을 댈테니 함께 사업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중이었던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그의 공장은 잿더미가 됐고 5만엔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게 됐다. 당시 일본 대기업 사원의 월급이 80엔하던 시절이니, 그 빚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1946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빚을 갚기 위해 비누나 포마드 같은 생활용품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제품의 질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전쟁 직후라 생필품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고, 그는 1년만에 그 많던 빚을 전부 갚고도 남는 큰 돈을 손에 쥐게 됐다.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몰라도 일은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정열이다”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렸지만 청년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본인들에게 미군들이 질겅질겅 씹던 껌은 마치 부자들만의 기호품처럼 동경의 대상이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눈이 남달랐던 청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소설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 감동깊게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이름에 따와 ‘롯데’라는 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청년이 바로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이다.

배고픔으로 달달한 맛을 그리워하던 일본인들에게 롯데의 껌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러나 큰 자본이나 기술 없이도 껌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수백개의 경쟁 회사들이 순식간에 생겨나 시장에 난립하는 형국이 됐다.
그는 눈 앞의 이익보다는 상품의 질을 높이는데 치중한 결과, 롯데를 세운 지 4년만에 일본 시장에서 20퍼센트의 점유율을 가진 껌 회사가 됐다.
 고객 중심, 최고 품질의 상품 중심, 인간 중심이라는 세가지 키워드가 신 회장이 가진 경영 철학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롯데라는 기업의 성장 히스토리는 혁신의 역사라고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혁신만이 필요하다. 기업 성장의 열쇠는 혁신하는 용기에 달려있다고 그는 늘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껌으로 최고의 위치에 오르자, 초콜릿에 도전했다. 당시 일본 제과업계의 양대 산맥이던 모리나가와 메이지를 누르기 위해 그는 초콜릿의 본고장 스위스에서 최고의 기술자들을 영입해왔다고 한다. 최고의 상품은 최고의 실력자에게 맡겨야 한다는게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사탕, 아이스크림, 비스킷으로 롯데의 제품 라인업을 확장했다. 그리고 외식, 레저, 서비스, 프로야구단 등 종합 생활 산업으로 사업의 영역을 점차 넓혀갔다.
1967년 한·일 국교가 회복되자, 눈물을 흘리며 떠나온 고국에 롯데제과를 세우고 한국에서의 사업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15년만에 일본 롯데와 비슷한 규모로 사업을 성공시켰다. 호텔과 백화점, 테마파크 사업을 비롯해 건설, 석유화학, 유통 등 다각적인 사업을 펼쳐 한국에서도 재벌 그룹의 반영에 올랐다. 

IMF 경제 위기 때도 다른 재벌 기업들은 부채 비율이 2백 퍼센트를 훨씬 넘었지만, 롯데는 대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부채 비율을 120퍼센트로 유지해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하는 알짜 기업이었다.
 뜬금 없게도 게임과는 전혀 무관한 롯데 신격호 회장의 사업 일대기를 언급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우연히 그의 평전을 읽다가 신 회장의 경영철학을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업계는 신 회장의 세가지 경영 철학인 고객 중심, 최고 품질의 상품 중심, 인간 중심과는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아 그의 성공 발자취를 되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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