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은 인간에 비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신들을 우러러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이를 의지하는 이유는 신들이 우리보다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프로게이머 홍민기(22세, CJ엔투스 프로스트)의 별명은 거창하다. 팬들은 그를 ‘LoL(리그오브레전드)’의 신(神)이라고 부른다. ‘LoL’의 포지션 중 말 그대로 서포트를 맡고 있는 홍민기는 선수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거의 신의 영역이라고 할 만큼 화려한 실력으로 ‘롤’ 게이머들의 찬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실제의 홍민기는 그저 평범한 청년일 뿐인데, 실제의 그를 만난 팬들은 소위 요즘 유행어로 ‘대다나다’를 연발한다.
진짜 신은 분명 아니겠지만 궁금한 건 사실이다. 홍민기가 정말 자격을 갖춘 스타인지. 이 글을 읽는 동안 ‘메라신’의 영접을 받아보자.
#. 神도 꿈이 있었다
매우 평범하다. 뿔테 안경 속에 가려진 똘망똘망한 눈만이 홍민기가 요즘 잘 나가는 ‘LoL’게이머 중 상위 클래스에 소속된 선수라는 것을 가늠하게 해줄 뿐, 또래 친구들과 섞여있다면 튀지 않는 외모다. 그래서 자꾸 캐묻게 된다. 과연 될 성 부른 나무처럼 어린 시절부터 소질이 있었는지. 하지만 그의 꿈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탐정을 좋아했어요. 추리만화나 비슷한 장르의 소설을 정말 많이 봤어요. 나중에는 셜록홈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웃음).”
홍민기는 타고난 전략가다. 포지션이 서포트이다보니 경기 전반의 운영적인 측면을 잘 살펴야한다. 그래서 팀원들이 그를 따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 쓰는 걸 좋아해요. 자기 전에 항상 이미지트레이닝을 하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플레이를 하는 게 임무이자 저의 목표에요. 우리팀 경기가 흥미진진한 것도 추리하는 재미가 있어서 아닐까요?”
#. 생애 첫 성취감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작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홍민기는 현실에 항상 감사하다. 그의 인생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순식간에 바뀌게 된 까닭이다.
“MIG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팀에 들어가면 일자리도 잃고 실업자가 되는 거니까요.”
그는 모험을 했다. 게임 안에 박혀있지 말고 세상 밖에 나와 싸워보기로 한 것이다. 6명의 팀원들은 단칸방에서 컴퓨터 6대를 놓고 합숙을 했다. 단체 생활도 처음, 어떤 대회에 나가 이겨보는 것도 가슴 떨리는 첫 경험이었다.
“국내 리그의 시작이었던 ‘LoL 인비테이셔널’에서 생애 처음으로 1등이란 것을 해봤어요. 친구가 없이 늘 혼자였던 내게 동료와 가족, 팬들이 생겼고요. 스무살 때까지 휴대폰이 없었는데 남들처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시작이었죠.”
#. 후회없는 선택
그가 속한 프로스트 팀은 국내에서 진행 중인 LoL 정규대회 ‘롤 챔스’에서 항상 4강에 오른 강팀이다. 홍민기가 농담처럼 인생의 50%를 게임에 쏟았다고 했듯 앉으나 서나 그의 생각은 오로지 우승뿐이다. 승부욕 때문이 아니다. 최근에 형제팀인 ‘블레이즈’가 4강 진입에 실패하면서 이를 저지한 상대팀에게 복수를 해주고 싶어서다.
“e스포츠는 저에게 삶이에요. 형제들이 생겼고, 침울했던 성격도 밝게 바뀌었어요. 낯을 가리지만, 친구가 생기고 팬들이 말을 걸어주면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그의 최종 꿈은 최고가 아니라 후회없는 게이머가 되는 것이다. 평소 임요환 감독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매번 최선의 노력을 다한 모습 때문이다.
“그 분의 자리까지 가고 싶어요. 선수로서 아름답게 마무리를 지으셨잖아요. 전 아직 진행형이라 언제든 무너질 위험이 있지만, 이겨낼 자신이 있어요. 뒤돌아봤을 때 후회없는 선택을 했다고 느끼면, 좋은 결실을 맺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