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데스크 칼럼] 노인과 호빵맨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3.09.04 11:29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한 게임 시장에서의 생존의 벽은 점점 더 높게만 느껴지고 있다. 그런 탓인지 요즘엔 “10년 넘는 기간동안 내놓은 그 많은 게임 중 성공한 작품이 하나도 없다. 게임 개발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그들의 말못할 고충을 충분히 공감하지만 명쾌한 해답을 내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대답으로 얼마전 읽은 ‘마음이 꺾일 때 나를 구한 한마디’란 책에 등장하는 노인의 인생 스토리를 공유하고 싶다. 그의 인생을 통해 우리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지도 모른다.
“50대까지 나의 인생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수십년간 나는 뭘해도 최고가 되지 못하는 2류 인생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는 노인은 올해 93세가 된 호빵맨의 원작자 ‘야나세 다카시’선생이다. 호빵맨이라 하면 그 모습에서 ‘아마도 귀엽게 생긴 젊은 여성 만화가’의 작품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야나세 씨가 호빵맨을 그린 것은 그의 나이 54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호빵맨이 처음 성공을 거둔 때 그의 나이는 환갑에 이르렀다.

풀리지 않는 야나세 씨의 삶에 언제나 따뜻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선배 만화가 스기우라 유키오는 “인생은 한발만 더 나아가면 바로 빛이다. 도중에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라며 다독였다고 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거센 눈보라 속에서 등반을 포기하고 얼어죽은 사람을 그 다음날 발견하고 보니, 정상을 10미터 남겨둔 지점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자세가 야나세 씨를 성공으로 이끈 셈이다. 
1919년생인 그는 21살때부터 5년동안 중·일 전쟁에 참전했다. 그 당시 느낀 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내야할 정의는 배고픈 사람을 돕는 것이었다. 어려운 이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떼어 먹이는 마음씨 좋은 호빵맨은 그의 삶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 같다. 호빵맨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무렵, 일본에선 울트라맨이나 가면라이더 같은 파워 넘치는 히어로 캐릭터가 판을 치던 때였다. 반면, 둥그런 빵의 얼굴을 한 채로 누더기 망토를 걸친 호빵맨은 비만 오면 다 젖어 비실대는 세상에서 가장 유약한 영웅이었다.
호빵맨 그림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는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려던 부모들이 호빵맨이 자기 얼굴을 떼어 아이들에게 먹이는 장면이 잔인하다며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야나세 씨에게는 남을 도우려면 나도 상처를 감내해야한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자신의 희생 없이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른들과 아이들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아이들은 책을 사달라고 부모를 졸라댔고 한번 책을 사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글도 모르는 3살짜리 아이마저 호빵맨에 열광했다. 인기를 얻게 되자 방송사의 요구로 호빵맨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매주 월요일 5시에 편성됐다. 예상과 달리 시청률은 저조했고 담당 프로듀서도 딱 1년만 채워보자고 했다. 그러나 호빵맨 애니메이션이션은 24년째 아직도 방영중이다.
호빵맨의 등장인물들에게는 손가락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호빵맨은 물론이고 식빵맨, 카레빵맨의 손을 보면 그저 둥그렇게 표현돼 있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직원들이 빨리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놀아주라는 야나세 씨의 속 깊은 배려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해도 느리고, 머리도 나빠서 보통 사람들이 사흘이면 아는 것을 30년 걸려서야 간신히 알게 될 때도 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도 몇년을 해도 발전이 없어서 이상하다며 웃곤 한다. 호빵맨도 그림도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해 왔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고보니 나름의 발자취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보다 훨씬 빨리 출세했던 사람들이 어느덧 은퇴하는 걸 보니 내가 아주 탁월한 재능을 타고 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이고 결코 서두르지 않는 그의 삶의 철학에서 우리의 조급한 마음이 위안받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경향게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