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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어느 축구단 이야기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3.11.12 19:42
  • 수정 2013.11.1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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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프로 리그에서 언제나 우승을 도맡아하던 축구팀이 있었다.
이 팀이 파워풀한 것은 그 만큼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많이 보유했기 때문이었고, 그에 따라 선수 개개인의 연봉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이 팀에는 현역 시절 그저그런 선수로 뛰다가 구단 고위층과의 인연으로 코치가 된 사람이 있었다. 코치는 연봉도 많고 언제나 매스컴과 팬들에게 주목받는 선수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무척 샘이 났던 모양이다.
 어느날 그는 건의할 사항이 있다며 감독을 찾아갔다. 요즘 선수들이 피로가 쌓이고 있는 게 분명한데, 그 원인은 밤늦게까지 삼삼오오 숙소에 모여 부루마블 게임을 하기 때문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래서 경기력 향상을 위해 밤에 일찍 자도록 하려면 부루마블 게임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참을 잠자코 듣고 있던 감독은 별 이유가 되지 않는다며 코치의 건의를 묵살했다.

그리고는 여러 도시로 원정 경기 떠났다. 여독 탓인지 몇 경기에서 연패하며 2위팀에게 바짝 추격을 당하자, 코치는 다시 감독을 찾아가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부진한 이유는 선수들이 밤새도록 부루마블을 하기 때문이니, 이젠 정말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곰곰이 코치의 말을 듣고 있던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놓고 밤에 숙소에서 부루마블 게임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내게하겠다는 새로운 규정까지 세웠다.
 선수들은 즉각 반발했다. 주장을 비롯한 고참 선수들은 감독을 찾아가 부루마블을 하면서 친목 도모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기 후 스트레스를 푸는 데 이것 이상 없다며 항변했다. 하지만 감독은 그들의 요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코치에게 선수들을 더 확실하게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그 후에도 일부 선수들은 몰래 숨어서 부루마블을 하다가 코치에게 들켜, 벌금을 내고 경고를 받았다.
선수들은 감독이나 코치가 진정으로 우리팀이 우승하기를 바라는 것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팀의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쳤고, 그럴수록 감독과 코치의 감시와 제재는 더욱 심해지기만 했다. 코치진과 선수들의 사이가 이 지경이니 훈련이나 시합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선수들이 한두명씩 계약 기간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른 팀으로 이적 신청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팀의 스타급 선수들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경쟁 구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최고의 조건을 제시했다.
여러차례 리그 우승을 했던 팀의 성적이 하위권에서 맴돌자, 그들을 열렬하게 응원했던 팬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선수도 떠나고, 팬들도 떠나버린 허울좋은 명문팀은 결국 만신창이가 된 채, 구단의 매각을 기다리고 있다. 선수들을 옥죄던 코치와 감독은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며, 소리소문도 없이 슬그머니 팀을 떠나버렸다.
 물론 굉장한 비약을 가미해 지어낸 이야기지만, 지금 대한민국 게임 업계의 현실은 몰락한 저 축구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위기 상황이다. 부루마블을 하기 때문에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논리와 게임에 과몰입해 올바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주장은 모두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코치처럼, 정치권은 우리 게임산업이 낳는 황금알을 꺼내기 위해 배를 가르려는 셈인가.
선수들이 뿔뿔이 다른 구단으로 흩어졌듯이, 게임코리아를 지탱해왔던 보석같은 게임 개발자들이 하나둘 중국이나 일본, 미국으로 떠나버릴 것이 자명하다. 
이대로 상황이 흘러간다면 우리는 조만간 배가 갈린 채 숨을 헐떡거리는 거위의 마지막 모습을 멍하니 지켜봐야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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