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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게임 특집] 오덕후 취향 ‘딱 잡은’ 괴작의 비밀은

수준 이하 카드게임으로 3천만원 벌어 … 오로지 ‘취향’ 만으로도 팔리는 시장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13.11.29 10:25
  • 수정 2013.11.2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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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니메이션을 볼 만큼 봤다. 만약 내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한가지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바로 촉수는 여고생을 사랑한다. 또 여고생은 촉수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이안 체이스 -
지난 2013년 6월 인디 문화 펀딩 사이트인 인디게임고고에는 그야말로 괴작 게임이 게시됐다. 게임명은 ‘Schoolgirls Love Tentacle(SLT)’. 우리말로 하자면 ‘여고생은 촉수를 좋아해’ 혹은 ‘촉수를 사랑한 여고생’쯤으로 의역할 수 있다. 이 게임을 개발한 이안 체이스는 게임에 대해 별다른 설명없이 동영상 하나만 올려놓은 채 촉수와 여고생이라는 단어 두개 만으로 이 게임을 설명한다.
프로젝트는 공개 당시 유저들 사이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장되는 듯했다. 실제 조회수도 그다지 높지 않았고,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그다지 활발하게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1개월이 지나자 상황은 대반전을 이뤘다. 총 모금액 26,282달러 당시 가치로 환산하면 우리돈 약 3천만원이나 되는 금액이 이 프로젝트에 몰렸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고생은 촉수를 좋아해’는 여러모로 위험할 것처럼 보이는 게임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잘못 다뤘다가는 당장 끌려가서 진술서를 써야 하는 장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전혀 19세 이상 이용가 게임이 아니며, 게임 내 모든 콘텐츠를 공개한다 할지라도 결코 끌려갈 일은 없다. 때문에 다행히 기사로는 언급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의미에서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 게임이 있을 수 없다.

카드 맞추기로 3천만원을 벌다
실제 게임 화면을 보면 더 어처구니 없다. 게임은 카드 24장을 바닥에 깔고 원하는 카드를 집는 방식으로 플레이한다. 각 카드 왼쪽 상단과 오른쪽 하단에는 궁합이 맞는(좋아하는) 촉수의 색깔이 표기돼 있다.
유저는 이제 4개 촉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각 카드를 뒤집는다. 카드를 뒤집으면 촉수의 색깔과 일치할 경우 보너스 점수를 얻는데, 연속으로 일치하는 카드를 뽑을 경우에는 점수가 더 오른다.
만약 일치하지 않는 색을 뽑았을 경우에는 콤보는 여기에서 멈춘다. 이런 방식으로 카드를 하나씩 가져가면서 모든 카드가 동이 날 때 까지 게임은 계속된다.
혹시 3천만원 펀딩 받은 게임이면 뭔가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게 전부다.

 

오히려 좋아하는 유저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이런 게임을 샀는데도 불구하고 구매자들의 평가는 ‘호평’일색이다. ‘언제 도착할지 도무지 기다릴 수가 없다’,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자지러지더라’, ‘1개 주문하고 혹시나 싶어서 스페어로 3개를 더 주문했다’와 같은 놀라운 댓글들을 볼 수 있다.
게임만 놓고 보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는 평가다.
사실 비밀은 구매자수에 있다. 펀딩 금액은 3천만원이지만, 사실 구매자는 560명에 지나지 않는다. 즉 1인당 5만원씩 내고 이 게임을 구매한 셈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더 당황스럽다.
게임만 구매한 사람(1만원) 38명 보다 티셔츠, 포스터 등을 구매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특히 100달러나 되는 한정판 인쇄물(10만원)을 구매한 사람은 79명이나 된다. 오로지 ‘촉수’와 ‘여고생’하나로 돈을 쓰는 사람들이 이 만큼이나 되는 셈이다.

 

무서운 마니아 시장
이 게임은 극히 단순한 구조로 슬슬 놀면서 작업해도 3일이면 모두 개발할 수 있는 수준의 게임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림들이 문제인데, 이 역시 딱히 높은 퀄리티는 아니어서 넉넉잡고 1개월만 투자하면 게임을 완성시킬 수 있는 퀄리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게임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타 게임들 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펀딩에 성공한다. 한마디로 마니아 취향을 알고 ‘팔리는 상품’을 기획한 것이 게임의 성공 요인이었던 셈이다.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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