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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디지털 닌자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3.12.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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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유럽의 게임 전시회에 가면, 덩치 큰 서양인들이 검은 복면과 천으로 온몸을 두르고 어울리지 않는 코스튬플레이를 한 모습을 이따금 목격하게 된다. 어딘가 어색하지만 영락 없는 ‘닌자(忍者)’ 스타일이다.
그들이 닌자에 열광하게 된 건, 역시나 일본산 게임이나 만화의 영향이 크다. 일본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무라이보다도 오히려 ‘닌자’쪽이 서양인들에겐 더 인기가 높다.
 염탐꾼 역할이랄 수 있는 닌자는 일본의 카마쿠라 시대에 처음 등장했다고 전해진다. 경쟁 세력의 밀도 높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이런 임무를 가진 직업군이 탄생한 것이다. 다이묘나  영주를 섬기던 닌자들은 초기엔 첩보 활동이 중심이었으나 이후에는 침투, 암살 등으로 그 역할이 점차 확대됐다.
 언제나 은밀하게 이동하고 숨어들어야 했기에 몸에 꼭 맞는 복장은 기본이다. 그 중에도 핵심은 ‘아시나카 조리’라는 닌자의 신발이다. 발 뒤축을 지면에 대지 않고 뛰기 위해 만들어진  신발은 신속한 이동은 물론이고 전혀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소리 없이 이동하고 잠입해야 하는 닌자에겐 최적의 장비인 셈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연막탄을 터뜨려 적들 의 시야를 흩뜨리고, 작은 압정을 뿌려 추적을 따돌리기도 한다. 거미발이라고 불리는 장비를 착용하면 물 위에서 걸어다닐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설로 전해진다. 

닌자의 탄생 배경에는 일본인 특유의 성향이랄 수 있는 정보 중시의 마인드가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듯하다. ‘토끼에겐 날카로운 발톱 대신, 긴 귀가 있다’는 일본 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이유 덕인지 사무라이의 발톱보다 닌자의 토끼 귀를 더 중시하는 일본인도 많다고 한다. 일본어에는 지고쿠노 미미(지옥의 귀)라는 말도 있다. 지옥에 사는 염라대왕이 인간 세계의 모든 것을 재빨리 알아낸다는 어원에서 나온 단어다. 특히나 미디어와 같이 정보를 다루는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은 극찬의 의미로 쓰인다. 예로부터 정보를 중시하는 일본인 특유의 습성이  ‘지고쿠노 미미’란 말 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술자리를 하면,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훈계하는 듯한 분위기로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신나게 떠들어대지만,  일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할 뿐,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다. 결국 술자리에서 한국인이 실컷 흘린 정보를 일본인은 가만히 앉아서 주워가는 격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일본이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닌자의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풀이하는 시각도 많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자사 경상 지출의 10% 가까운 비용을 경쟁 기업의 동향이나 새로운 상품의 정보 수집에 사용한다는 말도 들린다.
고도의 디지털 사회가 되면서, 우리의 정보는 단순히 다른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뿐 아니라, 메신저, SNS 등으로 알게 모르게 흘러들게 마련이다. 사사로운 신변잡기부터 기업의 비밀스러운 정보까지도 곳곳에 숨어있는 ‘디지털 닌자’들에게 도청당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인 특유의 말하기 좋아하는 습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소중한 정보가 아주 쉽게 디지털 닌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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