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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사물을 관찰하라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4.06.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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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점심 무렵, 주문한 피자를 먹고 있을 때였다. 한조각 먹다 남은 피자의 모양을 보고 갑자기 입을 벌리고 있는 캐릭터가 내 머리 속에 스쳤다. 운명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순간은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매던 때가 아닌, 의외의 시간에 찾아왔다. 캐릭터의 형태가 그려지자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점점 샘 솟았다. 나는 그때까지 사람의 행위로부터 키워드를 잡아 게임을 기획하는 독특한 버릇이 있었다.
팩맨은 결국 ‘먹는다’는 행위로부터 아이디어가 착안돼 탄생한 게임이다. 그 즈음 나는 오락실에는 왜 남자들만 들끓고 있을까라는 혼자만의 숙제를 풀기위해 고심했다. 여자들이나 커플로 즐기는 게임을 만들어보라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팩맨의 먹는다는 콘셉트는 군것질을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질 만한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1979년, 남코에 입사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던 풋내기 사원 ‘이와타니 토루’는 이렇게 전세계적인 히트작 ‘팩맨’을 창조했다. 팩맨의 당시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한 해 먼저 나와 미국 시장을 장악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누르고, 일본산 게임은 재밌다는 인식을 전세계에 심는 계기를 바로 팩맨이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 무렵 남코의 생산라인을 쉬지 않고 돌려도 팩맨의 월 생산대수는 2천대에 불과했다. 그런데 첫 주문 수량만 3만대가 들어왔으니 회사는 난리가 났을 법하다. 폭발적인 북미 시장에서의 매출로 말단사원들까지도 3천만원 가까운 보너스를 받았다고 하니 부럽기만 하다.
이와타니는 팩맨의 대성공 이후, 1983년에 ‘리블라블’이라는 액션 게임을 기획했다. 팩맨이 ‘먹는다’는 콘셉트였다면 리블라블은 ‘둘러싸는’ 행위가 포인트였다. 이 게임을 구상한 곳은 우습게도 디스코장이었다. 한창 디스코가 붐을 이루던 시기였기 때문인지 이와타니도 그 춤을 꽤 즐겼던 모양이다. 그는 디스코장이 언제나 혼잡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방해가 된다는 고민에 자주 빠지곤 했다. ‘이 사람들을 로프로 둘러싼 후에 모두 사라지게 하고 싶다’는 황당한 생각에 이른다. 리블과 라블이라는 캐릭터를 2개의 레버로 동시에 조종해 요정을 잡는 액션 게임이 ‘리블라블’이다. 팩맨 만큼의 히트를 치지는 못했지만, 리블라블은 남코의 게임 중 이색적인 타이틀로 그 독특함만은 인정받았다.
우리는 세계적인 히트 게임을 만든 이와타니의 기획 스타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출퇴근 지하철에서도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피자를 보고 팩맨을 연상했고, 디스코장에서 리블라블이 탄생한 것은 그의 유심한 관찰력에서 비롯된 셈이다. 결국 좋은 아이디어란 ‘관찰’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이와타니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다양하게 보고 들은 것들을 머릿속 데이터베이스에 쌓아두라고 그는 충고한다. 관찰에서 얻어낸 머릿속 데이터가 다양한 사항을 선택하고, 조합하는 행위를 통해 ‘발상’이라는 형태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사물인터넷’이 화두가 되고 있다. 가전 제품이나 전자기기뿐 아니라 헬스케어, 원격검침, 스마트홈, 스마트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물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을 말한다. 미국 벤처기업 코벤티스가 개발한 심장박동 모니터링 기계, 구글의 구글 글라스, 나이키의 퓨얼 밴드 등도 이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바이탈리티가 개발한 ‘글로캡’이라는 약병은 단순히 보관의 용도가 아닌, 환자에게 약 먹을 시간을 알려준다고 한다. 복용 시간이 되면 알람이 울리고 불빛이 번쩍인다. 그래도 약을 먹지 않으면 약병이 환자의 휴대폰에 문자를 보낸다. 약병의 뚜껑을 뒤집어 버튼을 누르면 약사에게 전화를 걸고 추가로 처방을 받을 수도 있다.
사물인터넷은 머지 않아 우리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새로운 트렌드가 될 전망이다. 나카타니의 사물 관찰 능력을 기반으로 한 게임 기획력을 몸에 익혀 사물인터넷과 접목시킨다면 어떨까. 세심한 사물의 관찰력과 최신 기술의 융합은 돌파구를 찾아  헤매는 우리 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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