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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다스트라 만지의 교훈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4.07.2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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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사회인 인도에 가장 비천한 신분인 수드라 계급의 한 청년이 살았다. 가난했지만 아내와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던 어느날이었다. 그의 아내가 산 위에서 굴러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치고 말았다. 청년은 아내를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사는 산골짜기 마을에서 읍내 병원으로 가려면 험준한 산을 무려 88킬로미터나 빙빙 돌아야 했다. 결국 응급 치료를 받지 못한 그의 아내가 쓸쓸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청년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마을과 읍내의 사이에는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칼바위산이 있었다. 청년은 생각했다. “저 산이 없었다면 아내를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청년은 아내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망치와 정 하나를 들고, 칼바위산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내의 죽음때문에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청년은 듣지 않았다. 때때로 다른 집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청년은 바위산 깨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무려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1960년부터 망치와 정으로 바위를 부수기 시작해 1982년 드디어 바위산을 관통하는 길을 뚫고 말았다. 총 길이는 915미터, 평균 너비 2.3미터에 깊이는 최고 9미터에 이르는 인간이 혼자서 했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22년 전, 혼자서 바위를 부수며 길을 내기 시작한 청년은 어느새 50줄의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산길을 돌고돌아 88킬로미터를 가야만 도착할 수 있었던 읍내에 20분 남짓한 시간에 갈 수 있었고, 자전거나 손수레를 타고 갈 수도 있게 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인도 정부가 상금과 훈장을 주겠다고 하자 그는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거절했다. 그의 이름은 ‘다스트라 만지’다. 그는 이번에는 마을 앞을 가로막은 아로푸르 강에 다리를 놓겠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작가 김홍신의 ‘인생사용설명서’에 소개된 가슴 뭉클한 실화다. 김홍신은 “‘다스트라 만지’는 내 가슴 속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가 위대한 것은 22년 동안 칼바위산을 깨부숴 길을 낸 행동 때문이 아니라, 거대한 산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존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스로의 존엄함을 인정하고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한다. 기나 긴 인생길에 때로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고, 차디 찬 눈보라에 직면할 수도 있다. 크고 작은 시련을 겪으며, ‘나는 정말 안되는구나’하는 열등의식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우리는 50억분의 1의 확률로 세상에 태어났으며, 전세계 67억명의 인구 중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작금의 우리 업계는 전례 없는 내우외환의 시련에 봉착해 있다. 정부의 규제는 날로 심해지고, 시장의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이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는 국내 시장에서는 더 이상 답이 없다며 허탈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22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바위산을 깨뜨린 ‘다스트라 만지’를 떠올려보자. 누가 감히 그 커다란 바위산을 혼자 힘으로 부술 수 있을 거라 예상이나 했겠는가. 작가 김홍신의 말대로 두려움 없는 다스트라 만지의 자존심이 그를 오랜 세월동안 포기하지 않고 버티게 만들어준 것이다. 망치와 정 대신에 키보드와 마우스를 쥔 게임인들이여,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바위산 저편 마을이 보일 때까지 한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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