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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아톰의 교훈

  • 김동욱 편집국장 kim4g@khplus.kr
  • 입력 2014.12.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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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의 일이다. 당시 일본에선 ‘아톰’의 광풍이 불었다. 공상과학 만화책의 주인공에 불과했던 작다란 우주소년에 일본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푹 빠져들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아이들은 아톰을 외치기 바빴다. 이쯤되자 학부모들과 교육계가 들고 일어났다. 날선 비판의 중심에는 만화의 내용이 너무 황당무계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어른들의 딱딱한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구 이외에 다른 별로 인간이 갈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고속도로와 고속열차가 일본에 생긴다니 믿을 수 없다. 로봇이 인간처럼 움직이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과대망상이라는 둥 다양한 지적이 쏟아졌다.
비판의 강도는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심해졌고, 이 만화를 그린 ‘데즈카 오사무’는 정신병자이고 아이들의 적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도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들끓던 아톰 비판론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홋카이도의 어느 마을에서 터지고 말았다. 아톰 흉내를 내던 어린 아이가 2층에서 뛰어내리다 중상을 입은 것이다. 학부모와 교육계를 넘어 신문에서 이 사고를 연일 대서특필했고, 당시의 지식층이라는 사람들은 일제히 만화를 ‘악의 축’으로 몰아갔다.  

우리나라의 게임 관련 업종 종사자라면 이 이야기에서 분명히 야릇한 데자뷰를 느꼈을 법하다. 아득히 오래 전 일이지만 만화를 악의 축으로 몰아갔던 그 시대의 일본과 63년 후, 대한민국 게임업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크게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일 터다. 아이가 2층에서 뛰어내린 사고의 책임을 아톰 탓으로 돌리는 상황은 FPS게임을 즐겼던 병사가 총기 사고를 냈다고 우겨대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왜 그리 비슷한 걸까. 황당무계한 설정이라 욕하던 그들은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고, 고속열차가 전국을 달리는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못 궁금하다. 
우리는 아톰의 일화를 통해, 아이들의 놀이라 치부했던 것들이 세계 시장에서 국익을 높여주는 문화산업이 될 수 있다는 교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가 거들떠보지 않았던 데즈카의 작품에는 미래가 있었고, 따뜻한 인간애가 있었으며 세상을 밝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다. 그가 품고 있던 보이지 않는 힘은 우주소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불새, 블랙잭 등 300여편의 작품 속에 스며들어,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인을 감동시켰다. 대한민국의 게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데즈카 오사무 감독은 자서전을 통해 당시 사태를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터져나오는 사람들의 비난과 야유를 어렵게 참아내면서 만화를 계속 그렸다. 본래 만화란 장르는 감성적인 미디어다. 논리나 리얼리즘에 속박당해서는 꿈과 낭만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아이들은 감성적인 힘에 있어서 만큼은 어른을 훨씬 압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와 만화가는 꿈과 낭만이라는 공통된 주파수로 서로 통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어린이의 문화를 부모나 선생님의 시각으로 판단하고 억압하려 한다면, 그것은 어른들의 파시즘이나 다를 바 없다”

틀에 박힌 시각으로 게임산업을 매도하는 일부 기성세대들은 데즈카 오사무 감독의 사려 깊은 충고에 귀 기울여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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