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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게임산업의 산타클로스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4.12.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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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베어(Ralph Baer)는 1922년 유태계 독일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나치의 유태인 배척이 극에 달했던 1938년, 17살이었던 그는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가 뉴욕으로 건너가 주급 12달러를 받으며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어느날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던 라디오 수리공 학교의 광고를 보고, 그는 엔지니어의 꿈을 꾸며 열심히 기술을 익힌 끝에 2년 후 학교를 졸업했다. 미국 국적을 가지게 된 그는 군에 입대하게 된다. 유럽 전선의 미군 정보 부대에 배속된 그는 총기류에 관심을 갖고 유럽의 다양한 총을 경험한다. 전쟁이 끝나고 퇴역 군인을 위한 장학금 제도를 이용해 대학에 들어간 그는 1949년 TV공학 학위를 받고 졸업한다. 그는 졸업 후 의료기기, 송전 감지 장치 등의 회사를 거쳐 1956년 군사 기업 ‘샌더스어소시에이트’에 입사해 레이더 등의 개발을 주도한다. 
1964년 미국보다 일본이 먼저 컬러TV를 만들어내며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미국산 흑백TV 가격은 폭락한다. 이를 본 랄프베어는 그때부터 ‘TV를 사용한 엔터테인먼트 기기’를 구상하게 된다. 그는 회사에 자신의 사업 구상을 어필해 쥐꼬리만큼의 예산을 겨우 받아 1968년 시제품을 완성해낸다. 당시의 프로토타입 케이스는 합판에 나무결 무늬 테이프가 부착돼 있어서 이를 ‘브라운박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랄프베어가 다니던 회사는 군사 기업이었기 때문에, 그가 만든 아이들의 전자 게임기 ‘브라운박스’로 사업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제네럴일렉트로닉스, 모토롤라 등 전자 계열 대기업에 찾아갔으나 당시로서는 생소한 게임기의 개념을 좀처럼 이해하지도 못했고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이 제품을 사업화하기로 결정한 마그나복스사의 빌 해리슨 부사장을 만나기까지 랄프베어는 몇년간 동분서주해야했다. 마침내 1972년 세계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 ‘마그나복스 오딧세이(Magnavox Odyssey)’가 정식으로 출시됐다.
게임기라고는 했지만 기껏해야 2~3개 정도의 하얀 도트를 페달로 움직이는 매우 간단한 형태였다. 게다가 사운드도 없었고, 획득한 점수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종이에 직접 숫자를 써야만 했다. 게임을 할 때마다 테니스코트와 레이싱 서킷, 미로 등이 그려진 투명필름을 TV 모니터에 붙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아이들이었다면 귀찮아서 게임기를 내팽개쳤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카트리지를 바꿔끼우며 할 수 있는 게임은 무려 27종이나 준비돼 있었다. 마그나복스 오딧세이의 당시 전세계 누적 판매량은 35만대에 달했다. 상당한 히트 제품이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전자 게임은 생소함 그 자체였다.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는 출시를 기념해 일종의 발표회를 열고 TV에 탁구 게임을 연결해 참석자들 앞에서 시연하게 된다. 마침 그 자리에 눈을 번득이며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사나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놀란 부쉬넬’이었다. 그는 탁구 게임에서 모티브를 얻고, 그리 오래지 않아 ‘아타리’를 설립한다. 그 때 처음 만든 게임이 최초의 게임이라 불리우며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퐁(Pong)’이다.
한편 마그나복스 오딧세이가 인기를 끌자, 닌텐도의 미국법인은 주변기기인 광선총을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닌텐도가 게임기라는 상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마그나복스 오딧세이의 광선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가설도 상당히 신빙성 있는 듯하다.
결국 게임이라는 엔터테인먼트를 세상에 전파한 랄프베어는 그로부터 수년 후 세계 게임시장을 주름잡게 된 아타리와 닌텐도에게 천금같은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다.
40여년간 비약적인 속도로 발전한 게임산업에 최초의 씨앗을 심은 이가 바로 랄프베어다. 게임계의 산타클로스와 같은 그가 지난 12월 6일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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