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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아르바이트 신화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5.07.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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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北海道)라고 하면, 일본의 가장 북단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이와타사토루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교 시절 휴렛팩커드(HP)가 출시한 포켓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독학으로 프로그램을 익혔다. 혼자서 뚝딱뚝딱 만든 게임을 자랑삼아 HP 일본대리점에 보내기도 했다. HP에서는 삿포로에 대단한 실력의 고교생이 있다며, HP의 신제품 컴퓨터가 나오면 그에게 보내주곤 했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당시로서는 최신형 컴퓨터였던 코모도사의 PET2001을 큰 맘 먹고 구입했다. 탐구심 가득한 그는 역시나 새 컴퓨터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본체부터 부속까지 샅샅이 뜯고 조립하고 프로그램을 속속들이 파악했다. 이와타의 신형 컴퓨터에 탑재된 CPU는 MOS 6502였고, 이후 패미컴(패밀리컴퓨터)에도 동일한 CPU가 탑재된다. 당시 닌텐도가 MOS 6502를 패미컴의 CPU로 채택한 것은 복제가 쉽게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할(HAL)연구소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간 이와타는 어느날 닌텐도 담당자와 만난 자리에서 패미컴의 CPU가 MOS 6502인 것을 알아채고, CPU의 버그를 활용한 프로그램 비법을 보여주며, 담당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자신들에게 게임 개발 하청을 주는 속칭 ‘갑’기업 닌텐도로부터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는 지도 모른다.  
이와타의 프로그램 실력이 빛을 발하게 된 일화도 유명하다. 지금도 일본 게임업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마더2의 개발비화’가 바로 그거다.
파이널판타지나 드래곤퀘스트같은 판타지 세계관의 RPG들이 시장을 움켜쥐고 있던 시절, 닌텐도가 1989년에 발매한 ‘마더’. 이 패미컴용 게임은 1960년대 미국의 시골을 무대로 한 당시로서는 기발한 현대풍 설정으로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첫타이틀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후속편인 ‘마더2’는 개발이 시작되고 4년이 지나도록 변변이 보여줄 것도 없는 지지부진한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개발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무렵, 할(HAL)연구소 소속의 이와타가 긴급 소방수로 투입된다. 작업된 프로그램 소스를 곰곰이 살펴보던 그는 “지금 있는 것을 살리면서 프로그래밍을 하면, 2년은 족히 걸린다. 그러나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면 6개월이면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결국 반년만에 그는 슈퍼패미컴용 ‘마더2’를 전작에 뒤지지 않는 명작으로 깔끔하게 손질한다. 세상에 안되는 일은 없다는 신념을 품은 그의 말은 아직도 일본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개발뿐 아니라 경영 면에서도 특출난 수완을 보인다. 1992년 할연구소는 과도한 빚이 누적돼 법원에 화의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회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과감하게 사장에 취임한다. 이후 할연구소는 ‘별의 카비’ 시리즈,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시리즈 등을 히트시키며 탄탄한 기업으로 탈바꿈한다. 꼼꼼한 개발능력과 탁월한 사업 능력을 높게 평가한 닌텐도는 그를 스카웃한다. 2002년에는 닌텐도의 4번째 사장이 된다. ‘게임인구의 확대’를 부르짖으며 닌텐도DS, 위(Wii) 등을 시장에 내놓으며,게임왕국 닌텐도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하청 업체의 아르바이트생이 본사의 CEO가 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 바로 이와타 사장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지난 7월 13일, 담관암으로 55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가 생전에 했던 명언은 게임업계의 개발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프로그래머는 안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어떠한 어려운 요구라도 안된다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기획은 휴지조각이 된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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