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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체 등치는 ‘벤처 브로커’ 판친다

  • 이석 아이위클리
  • 입력 2004.02.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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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사를 운영하는 문성환씨(33·가명). 문씨는 얼마전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투자자를 연결시켜 주겠다는 게 문씨가 받은 제안 내용. 문씨는 평소 같으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회사 자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씨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브로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브로커 회사의 연구소장 명함을 만드는 게 거래 조건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문씨가 브로커로부터 약속받은 투자 금액은 30억원. 적지 않은 액수다. 이때부터 문씨와 브로커는 본격적인 투자 유치 작업에 들어갔다. 투자에 필요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도 같이 만들었다. 그러나 문제의 브로커는 투자 협상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문씨를 협의 선상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문씨는 “회사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위장한 뒤 투자금을 받기 위해 자작극을 벌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브로커의 실체를 알고 미리 발을 빼지 않았다면 가지고 있는 기술마저 날릴 뻔 했다”고 털어놓았다.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김태경씨(42·가명)도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다. 김씨는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워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중소기업 진흥 공단에서 지급하는 벤처 지원금을 받아주겠다는 전화를 자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서는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간다. 더군다나 매출 전표 등 지원 신청에 필요한 서류도 알아서 만들어 준다고 하니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김씨는 그러나 거래를 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브로커들이 지원금의 10%를 선금으로 떼어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혀 생각을 안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았다”며 “벤처기업 운영하는 사람치고 이런 제안 한번쯤 안받아온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렇듯 게임 업계를 상대로 돈을 뜯는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벤처 열풍’ 당시 활약했던 사채업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 사채업자가 투자를 통해 경영권 간섭을 노리듯, 브로커들은 투자 유치를 미끼로 고액의 수수료를 요구한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 동원 능력이 부족한 영세 업체가 브로커들의 주요 타깃이다. 이들은 갖가지 감언이설로 업체를 설득한다. 이렇게 해서 계약이 성사될 경우 일정 금액을 수수료 명목으로 갈취한다. 총 투자금액의 10% 정도가 공식 가격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투자 협상이 성사됨과 동시에 돈만 가지고 종적을 감추는 경우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어 업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제는 ‘게임 브로커’들의 마수가 코스닥 시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 기업의 M&A에 적극 개입해 막대한 이득을 남긴다. 물론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대주주에게 돈을 빌려줘 막대한 이자를 뜯어낸다. ||전문가들은 최근 업계에 파문을 던진 ‘위자드 사태’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위자드소프트 임호길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메가베이스 이용갑 대표로부터 위자드주식 108만8천548주(17.20%)를 43억원에 매입해 최대주주가 됐다. 이 전 대표는 그러나 경영권을 장악한지 2달도 안돼 회사돈 22억원을 횡령하고, 회사 통장을 담보로 35억원을 대출해 잠적했다.

M&A 컨설팅업체인 프론티어M&A 배주성 팀장은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일부 벤처 경영진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임 전 대표가 메가베이스로부터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사채나 브로커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피해는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배 팀장은 “코스닥에 등록돼 있는 기업중 상당수가 현재 이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업체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대주주의 횡포로 인해 껍데기만 남은 곳도 상당수 있는 만큼 투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현재 ‘제2의 위자드 사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동명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인수금 중 10∼30%만 계약금으로 걸면 법인통장을 통째로 받을 수 있는 게 코스닥의 관례다”며 “M&A 과정에서 대주주 횡령 스캔들이 더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내부 고발자 제도의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코스닥 위원회가 올해부터 내부 고발 적용 대상을 불공정 거래에서 경영진 부정행위로 확대한다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며 “개인신상 보호와 포상금 확대가 없는 상황에서는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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