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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설경마장 '사기 극성'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12.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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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경마장 이거 장난이 아닙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경찰서 강력1반 사무실. 이곳에서 만난 한 경찰 관계자는 사설경마자의 폐해가 이미 적정 수위를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이 관계자는 “사설경마장에 갔다가 거액을 사기당했다는 민원이 자주 접수되고 있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직장인이거나 자영업자들이다”고 설명했다.

상대를 속이기 위한 이들의 수법은 웬만한 첩보영화를 능가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사냥감을 유인하는 ‘알선책’, 기기를 조작하는 ‘기술책’, 신분을 속이고 게임에 참여하는 ‘행동책’, 돈을 관리하는 ‘자금책’ 등 철저하게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때문에 무작정 게임에 참여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물론 경찰도 나름대로 수사력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주택가에 게임장을 개설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 이 관계자는 “게임장 자체가 주택가의 빌라를 빌려 운영되고 있다”며 “조직 자체도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돼 있어 단속이 뜨면 곧바로 자취를 감춰 단속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실제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달 18일 영화 ‘스팅’에 등장하는 수법을 모방해 거액을 챙긴 경마사기 일당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강남 논현동의 한 빌라에 사설 경마장을 마련해 조직적으로 1억5천여만원을 갈취한 혐의다.

경찰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택가에 경마 중계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기술책인 박모씨(35)의 몫. 박씨는 과천 경마장에서 벌어지는 경마 경기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한다. 게임에 필요한 시설의 설치되면 알선책인 신모씨(43)가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사건을 조사한 강력1반 이관형 형사는 “피의자들은 평소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해 ‘목돈을 만지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참가자들을 유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말만 믿고 경마에 참여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평소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사기꾼들이기 때문이다.

과천 경마장에서 중계되는 경기를 실제보다 2분 정도 늦게 중계되도록 조작하는 게 이들의 사기 수법이다. 이를 위해 빌라 내에 또하나의 밀실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경기 결과가 들어오면 승리마를 파악한 뒤, 게임실의 같은 조직원에게 귀띔해 준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의심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전술이 선보인다.

외부와의 전화를 차단하기 위해 휴대전화 전파차단기를 설치하는 등 첨단기기가 총동원 됐다. 피해자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사전에 배수진을 치기도 한다. 요컨대 5경기는 정상적으로 게임을 한다. 이렇게 해서 상대가 어느정도 돈을 따면 한 판에 승부를 결정짓는다.

이 형사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조사해보니 6번째 판에 1천8백만원이 베팅됐다”며 “이렇게 해서 피해자 두명으로부터 각각 1억원과 5천만원을 뜯어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있기 며칠전에도 비슷한 수법의 사기단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지난 8일 불법 사설경마장을 개설해 거액을 챙긴 최모씨(30) 등 두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의 수법도 위의 사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경찰에 따르면 사설 경마장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마사회에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마사회에 등록하지 않고 주택가에 둥지를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평소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거액을 벌 수 있다”고 설득해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이들이 4명으로부터 갈취한 돈을 4억5천만원.

어떻게 이같은 일이 가능한 것일까. 현행법상 한 경기에 베팅할 수 있는 상한선은 10만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무런 제재없이 한판에 수백만원씩을 걸었다. 취재진은 한 경마전문지의 관계자를 만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맞대기’라 불리는 비밀 모임을 이용할 경우 얼마든지 고액 베팅이 가능하다. 그는 “경마 당일 신관람대 6층에 가보면 전화로 맞대기를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며 “이들의 베팅 금액은 일반인들과는 수준부터 다르다”고 귀띔했다. 더군다나 맞대기를 이용할 경우 세금으로 나가는 돈도 없다.

이 관계자는 “마사회를 통해 베팅하게 되면 수익금의 30%가 세금으로 부과된다. 그러나 맞대기는 사설 모임이기 때문에 세금을 떼일 염려가 없어 ‘큰손’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목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돈을 걸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포경찰서 이관형 형사는 “피해자들의 상당수는 ‘거액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된 것으로 조사됐다”며 “경마 사기단의 경우 갖가지 감언이설로 상대를 유인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경마 상한선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마 애호가 김모씨(32)는 “베팅 상한가를 제한한 것이 결국은 불법 사설경마장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베팅할 수 있는 금액을 올릴 경우 이같은 폐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베팅 상한가를 올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게 마사회측의 설명이다.

마사회의 한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도박을 조장하고 있다는 여론이 팽배한 상황에서 베팅금액까지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현재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사설경마장 단속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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