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뿐 아니라 영국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가 영국 무역투자청 특별대표 자격으로 한국 게임업체들을 방문한 적도 있고,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는 지난 2004년 슈테판 팀스(St-ephen Timms) 영국 정보통신부 장관이 넥슨을 견학했던 적도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이어지는 해외 유명인사들의 끊이지 않는 방문에, 게임산업개발원이 늘 분주하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들 국내외 실무 관계자들의 방문과는 또 다른 ‘높으신 분들’의 행차가 지난해부터 더욱 눈길을 끌고있다. 바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계인사들의 게임업계 진출기’다. 맹형규·정청래·이광재·정성호 의원 등이 최근 게임관련 이슈에 자주 얼굴을 등장하고 있는 것은 물론, 지난 WCG나 JCEG등의 행사에 각 지역 해당 ‘높으신 분’들의 행차가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장관 등의 실무 선상에 있는 ‘높은 분들’이 찾는 곳이 실제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업체였다면, 국회의원들의 첫발은 방향이 조금 다르다. 많은 관중이 몰리는 e스포츠장과 지방 유치 행사, 그리고 아이템현금거래와 관련한 곳에 유독 정계 인사들의 행보가 도드라졌다.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e스포츠 민심을 잡기 위한 이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다. 행사장을 찾고, 한때는(어쩌면 지금까지도) 부모세대로부터 ‘게임중독자’ 취급을 받던 프로게이머들을 직접 만나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들 국회의원들은 한결같이 e스포츠 활성화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e스포츠 전용구장과 프로게이머들의 군문제에 대한 언급도 서슴지 않는다. 대기업후원에 교량 역할을 자처하겠다는 황공한 공약까지. e스포츠에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는 이 같은 ‘국회의원들의 애정’에 업계는 다소 ‘당황스럽다’는 표정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청소년 탈선의 온상취급을 받던 게임사업에, 어느날 갑자기 국회의원이라는 ‘높으신 분들’이 앞장서 어깨를 두드리는 현실의 격차가 사뭇 컸기 때문이다.
한국의 e스포츠는 국내 게임업계가 어렵게 피워낸 상징적 ‘꽃’이다. 무수한 개발사가 굶어가며 만든 게임들이 사장되고, 사장된 게임들을 밑거름으로 새로운 게임들이 나오며 유저들과 대중들의 사랑으로 피워낸 꽃이 바로 e스포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방문화’라는 게임에 대한 비난을 화려한 무대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리그다. 물론 해외게임인 ‘스타크래프트’가 그 핵심이 되고 있지만, 최근 국내리그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단계고, ‘스타리그’라는 것 자체가 한국만큼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처럼 ‘다 피운 꽃’을 보며 국내 수많은 리그팬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그 환호와 박수를 빼앗기 위해 누군가 꽃을 꺾어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눈길을 끈다.
언젠가 경제업계의 한 관계자는 “잘 나가던 사업에도 정치가 엮이면 이미 날 샌 것”이라는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헛공약과 헛바람에 소문만 무성해지고 그 소문만 바라보다 결국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를 무수히 봤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e스포츠 및 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이 출범하고 게임산업진흥법이 상임위를 통과하는 등 게임업계에 있어 큰 진전이 이뤄진 것도 인정할 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올 2006년을 기대하게 되는 대목이다. e스포츠 10만 관중과 함께 직접 팔을 걷고 ‘꽃’을 가꾸는 ‘높으신 분들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