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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드게임카페는 즉석 부킹 '열기'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10.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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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8일 저녁 7시 압구정 로데오거리 인근. 최근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흥청망청 마시고 즐기는 대신 보드게임방을 찾는 젊은 남녀가 늘고 있는 것.

‘메인보드’라고 적힌 간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게임방의 내부의 첫인상은 고급 카페를 연상케 했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형광빛 조명으로 장식된 모습이 웬만한 카페의 분위기 못지 않았다. 이미 상당수의 연예인이 다녀간 듯 연예인이 직접 사인한 친필도 이곳저곳에서 눈에 띈다.

얼마전 이곳에서는 독특한 이벤트가 벌어졌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회원 90명을 초청해 단체미팅 행사를 벌인 것. 메인보드 김주환 대표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결혼정보회사에서 주최하는 단체미팅은 호텔 등에서 성대하게 치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보드게임방을 통한 만남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회원들의 반응은 게임방측의 예상 이상이다. 게임을 통해 만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는 게 회원들의 한목소리다. 김 대표는 “처음 만난 남녀를 사랑의 작대기 등으로 맞추어놓았기 때문에 어색한 게 사실이다”며 “그러나 게임을 통해 만나면서 이같은 서먹서먹함을 쉽게 잊을 수 있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넷 미팅 동호회의 미팅 행사도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만난 한 팀도 보드게임방을 통해 만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직장인 양선진씨(25)는 “게임을 하며 만나다 보니 처음의 어색함을 금방 잊을 수 있었다”며 “이때부터 이곳에서 자주 만남을 가지는 편이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성이 맞장구를 친다. 직장인 권성훈씨(29)는 “이미 보드게임방을 통한 만남이 일반화 돼있다”며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동호회까지 만들어 이곳에서 미팅을 갖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또다른 보드게임방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는 요즘 ‘테이블 대항전’이란 이벤트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다. 요컨대 카페를 찾는 솔로 남녀끼리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이주형씨(24)는 “대학가 일대에서는 이미 보드게임방을 통한 부킹 문화가 일반화되고 있다”며 “게임을 즐기면서 잘만 하면 자신의 이상형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이렇듯 보드게임방이 급속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단순히 게임만 즐기는 공간에서 청춘 남녀의 ‘부킹 장소’로 진화하고 있다. 신촌에 위치한 한 보드게임방의 경우 아예 공개적으로 ‘게임팅’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신촌역 사거리에 위치한 ‘X-사이트’ 게임방이 대표적인 예.

이곳에서 들어가면 입구에 ‘원하시는 분들은 게임팅을 주선해 드립니다’라는 공고를 붙여놓았다. 때문에 손님이 원하기만 하면 다른 테이블과의 즉석 만남이 언제든 가능하다.

게임방 관계자는 “서비스를 시작한지 한달 정도밖에 안됐다. 그러나 입소문이 퍼져서인지 남성이나 여성끼리 와서는 다른 테이블을 연결해달라는 주문이 많다”고 귀띔했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꽃미남보다는 게임 고수가 더 킹카 대접을 받고 있다. 이 관계자는 “게임 초보와 자리를 가질 경우 게임을 가르쳐주면서 자연스럽게 데이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가게를 찾는 단골 중에는 이렇게 해서 만난 커플이 꽤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상업적이 아니냐는 우려도 터져나오고 있다.
직장인 김성수씨(32)는 “젊은 남녀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을 볼모로 해서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치우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메인보드 김주환 대표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만 2백여개의 보드게임방이 성업중이다. 특히 대학가 일대나 압구정동의 경우 10여개의 보드게임방들이 몇건물을 사이에 두고 똬리를 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게임만 서비스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퇴폐적인 만남은 아니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이벤트의 지속적인 개최가 불가피하다. 오히려 나이트클럽과 같이 퇴폐적이고 소비 향락적인 만남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X-사이트측도 비슷한 입장이다. X-사이트 김범기 대표는 “오히려 손님들이 와서 테이블을 연결해주길 원한다’며 “게임팅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것도 카페를 찾은 여성 두명이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남성끼리 온 테이블을 연결해달라고 요청해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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