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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마중물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5.09.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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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코리아로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던 때, 우리 산업에도 다양한 형태의 투자와 지원이 많았다. 최근 몇년새 시장은 모바일로 바뀌었고, 크고 작은 개발사들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창업 초기에는 여러곳의 지원 사업에 문을 두드리게 마련이다. 지원을 받고자 하는 회사는 많지만, 지원 규모는 크게 늘어나지 않으니 창업한 CEO 입장에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산업 진흥을 위한 지원은 이어지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어떻게든 다시 회수할 수 있는 쪽에 치우치게 된다.
최근 유럽 각국은 게임산업을 비롯한 새로운 비즈니스를 육성하기 위해 활발한 지원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유럽연합의 산하 조직인 ‘유럽위원회’가 주도하고 미디어 문화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크리에이티브 유럽(Creative Europe)’이란 단체다. 영국에 총괄 본부를 둔 ‘크리에이티브 유럽’은 약 14.6억유로(약 1조 9천억원)의 예산을 가지고, 올해 들어서만 이미 31종의 게임 개발 프로젝트에 총 340만 유로(약 45억원)를 지원하고 있다.
얼마 전 공개된 크리에이티브 유럽이 지원한 회사 리스트는 매우 흥미로운 시사점을 남긴다. 폴란드의 시디프로젝트(CD Projekt)가 개발한 액션RPG ‘더 위처3:와일드헌트’의 확장팩 ‘블러드 앤 와인’의 경우 크리에이티브 유럽에서 15만 유로(약 2억원)의 개발 자금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이는 전체 개발 비용의 70%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개발사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였을 법하다. 또 슬로베니아의 미디어 아트라스(Media ATLAS)가 개발한 ‘매나스 다운(Maenas Down)’의 경우는 크리에이티브 유럽으로부터 2만 4,000유로(약 3,200만원)가 지원됐다. 이 금액은 전체 개발 예산의 44%로 거의 절반 가까운 지원이 이뤄진 셈이다. 게임의 퀄리티가 전혀 떨어지는 수준이 아님에도, 동유럽 회사들의 개발비용은 우리와 비교하면 턱 없이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약간은 비주류처럼 보이는 동유럽 개발사들도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던 계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될 성 부른 떡잎만을 쫓아다니는 아시아권의 투자 지원 행태와는 달리, 크리에이티브 유럽은 회사나 게임, 인력의 규모, 수익 모델, 대응 플랫폼 등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중시하는 것은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이라고 한다. 자금 지원을 받은 상당수의 게임이 어드벤처나 롤플레잉 장르가 많은 것도 ‘스토리 중시’의 규정때문으로 보인다. 당장 돈을 잘 벌 만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 지원해, 자금을 빨리 회수하려는 우리 업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토리가 있는 작품의 창조를 유도해, 플레이어에게 큰 감동을 주는 멋진 시리즈로 육성하겠다는 순수함이 엿보인다. 소탐대실하지 않는 서포트를 통해 제대로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자리잡게 하면, 더 큰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 들어 모바일과 인디게임을 중심으로 유럽의 게임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뒷배경에는 ‘크리에이티브 유럽’과 같은 지원 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몇십년 전의 기억이다. 그 때만해도 시골은 물론이고 도시에도 마당 한켠에 수동 펌프가 있었다. 지금처럼 현대식 상수도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펌프로 물을 퍼올려 사용해야 했다. 꼬맹이였던 나는 펌프질만 열심히하면 물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한바가지 정도 물을 넣어줘야 물길이 이어지며 펌프에서 물이 콸콸 쏟아졌다. 한바가지 부어넣는 그 물을 바로 ‘마중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얻으려면, 무엇인가 먼저 넣어줘야 한다. 
우리 개발사들은 지금, 그때의 나처럼 마른 펌프질을 연신 해대고 있다. 그래서는 천지가 뒤집혀도 물이 나올 턱이 없다. 우리 개발사들에게 마중물을 넣어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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