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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오락실 '비상경계령'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09.0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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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저녁 8시 종로3가 Y어학원 부근. 이곳은 여러곳의 성인오락실이 대로를 따라 성업중이라 ‘한국판 라스베이거스’로 불린다.

요즘 이곳 업계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저주파 치료기를 이용한 사기 도박단들이 본격적인 원정에 나섰다는 게 소문의 골자.

인근에서 가장 크다는 업소로 들어가 보았다. 내부는 이미 ‘도박 삼매경’에 빠진 남성들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얼굴에 마이크를 걸친 종업원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게임을 부추긴다. 잠시 후 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게임에 임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취재진을 만난 업주는 일단 ‘모르쇠’로 일관했다.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다. 오히려 취재진을 경계하는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소문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순순히 털어놓을 분위기는 아닌 듯 했다. 다른 업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업주들은 한결같이 취재진과 마주하기를 꺼려했다.

인근 성인오락실을 다 돌았을 즈음, 한 업주가 살짝 취재진을 불러 세운다. 저주파 치료기는 모르겠지만 리모콘을 이용한 사기는 빈번하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이 업주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인오락실은 출시될 때 그대로 기계를 설치한다. 그러나 일부 부도덕한 업주들이 손님 모르게 기판을 조정하기도 한다. 이 경우 업주가 풀어주지 않으면 절대 당첨이 나오지 않게 된다.

그는 “제 얼굴에 침뱉는 이야기 같지만 일부 업주들이 리모콘을 이용해 당첨주기를 조작하기도 한다”며 “업주들이 사용하는 리모콘과 같은 기종을 사용해 ‘콜’을 할 경우 승부 조작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리모콘을 사용해 승부를 조작하는 방법을 ‘콜’이라고 말했다. 리모콘은 보통 대림상가의 일부 기판 제작소를 통해 음성적으로 제작, 판매되고 있다. 가격은 상당히 고가다. 리모콘 한 대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업주는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업소의 경우 이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리모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업주가 콜을 걸어놔야 하는데 종로와 같은 큰 업소에서는 이같은 장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성인오락실의 경우 대부분이 단골손님 위주로 장사를 한다. 때문에 가게에서 장난이 친다는 소문이 퍼지면 업소는 그 자리에서 문을 닫아야 한다. 보통 큰 업소보다는 변두리의 조그만 업소에서 이같은 수법이 성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여러차례의 조언을 들은 후 성남의 한 성인오락실에서 어렵게 저주파 치료기의 실체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업주에 따르면 저주파 치료기는 단추를 눌러 화면에 ‘7’이나 과일 그림이 나란히 나오면 돈을 따는 슬롯머신 방식의 게임에 많이 쓰인다.

요컨대 슬롯머신에는 당첨과 허탕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도록 조정하는 장치가 내장돼 있다. 당첨 주기는 기계가 출시될 때 프로그램 돼있다. 저주파 치료기를 이 주기에 맞춰놓으면 당첨 주기 때마다 몸에 자극이 오게 돼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몸에 자극이 올 때마다 반사적으로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저주파 치료기를 사용한 사기 수법은 일본에서 건너왔다”며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당첨 확률을 수십배까지 높일 수 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실제 일본에서는 이미 저주파 치료기를 이용한 사기 도박으로 인해 업계 뿐 아니라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문적인 도박사 뿐 아니라 학생, 주부 등 일반인들도 저주파 치료기를 이용한 도박에 탐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쿄 이케부쿠로 전철역 부근의 파친코 거리에서는 이 수법을 쓰다 적발되는 사람이 하루에만 10여명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저주파 치료기를 제재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몸이 아파서라고 잡아떼면 할말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저주파 치료기를 숨겨오지 말 것”을 경고하는 안내문을 문앞에 붙이는 진풍경도 자주 연출된다. 일부 업소에서는 아예 게임장 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CCTV를 설치하기도 한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당첨률이 높은 손님들의 손끝이나 신체의 일부가 주기적으로 떨리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저주파 치료기를 몰래 사용하다 적발될 경우 건조물침입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고발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저주파 치료기로 인한 사기 사례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그 시기가 언제냐일 뿐이지 결국에는 하나둘씩 나타나게 돼있어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종로의 한 성인오락실 업주는 “얼마전 일본의 단체 손님들로부터 게임을 할 수 있겠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지만 거절했다”며 “아마도 저주파 치료기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주는 저주파 치료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감시의 눈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 업주는 “장난을 치는 사람들은 일단 주변을 자주 둘러보는 등 특징이 있다”며 “때문에 몰래 장비를 숨겨왔다고 해도 업주들의 예리한 눈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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