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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도박 경계령'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08.1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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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초등학생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은 이른바 ‘가위바위보’.

게임기 안에 1백원짜리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가위바위보 모양이 그려져 있는 게임기안에서 불빛이 돌아가다 멈춘다. 이렇게 해서 컴퓨터를 이기면 안에서 은색 메달이 쏟아진다.

‘화살표’ 게임도 인기다. 이 게임도 동전을 넣으면 게임기안의 길다란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원 모양의 게임기 안에 새겨져 있는 0부터 25까지 숫자 위에 화살표가 멈추면 해당 숫자만큼 메달이 쏟아진다. 액수나 게임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성인 카지노의 룰렛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현장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우 화살표가 ‘0’이란 숫자에서 멈춘다. 그러나 간혹 가다 5나 7의 숫자에 멈추기도 한다. 이 경우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게임에서 딴 메달은 즉석에서 현금화가 가능하다. 게임기를 설치한 문구점에서 현금이나 물건으로 교환해주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8일 공덕동 K초등학교 앞 문구점. 방학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의 초등학생들이 미니 도박기 앞에 모여 게임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는 것도 잊은 채 쪼그려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잠시 후 아이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화살표 게임을 하던 한 아이가 대박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는 행운을 거머쥔 초등학생 이모군(9)은 “대부분은 돈을 잃는다”며 “오늘도 2천원을 잃고나서야 처음으로 7개짜리 메달에 당첨됐다”고 말한다.

인근에 위치한 아현동 O초등학교 앞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문구점 간판을 내건 상점들이 경쟁적으로 미니 게임기를 비치하고서 초등학생들을 유혹하고 있다. 게임기 앞에는 으레 서너명의 초등학생들이 모여 ‘도박 삼매경’에 빠져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이곳에서는 변형된 펀치 게임기까지 눈에 띈다. 요컨대 기존의 펀치 게임은 목표물을 내리쳐 점수를 올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게임기를 변형시켜 ‘666’ ‘777’ ‘888’과 같은 숫자가 나오면 메달이 나온다. 구슬이 나오는 게임도 있는데 모두가 즉석에서 현금화가 가능하다.

문제는 바로 이점에서 비롯된다. 현금 교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청소년들이 공공연하게 도박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조차 “어른들이 하는 도박 게임과 비슷하다”고 말할 정도.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김모씨(45)는 “성인 게임장에서도 현금으로 바꾸면 처벌을 받게 돼있다”며 “하물며 초등학교 앞에서 현금 교환이 가능한 게임기를 버젓이 비치하는 것은 도박을 조장하는 것이나 뭐가 다르겠냐”며 볼멘소리를 털어놓는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도박산업(경마, 경륜, 경정, 강원랜드 카지노, 복권)의 시장규모는 13조9499억원. 복권을 제외한 연간 이용객수만 2천3백15만8천명으로 전년 대비 21.5% 늘었다. 이는 20세 이상 성인인구가 1년 동안 40만5천원 꼴로 베팅한 셈이 된다. 도박산업이 성장하면서 참여한 사람들의 손실액도 4조9백91억원에 이른다.

서 소장은 “국민들이 너도나도 도박에 빠져드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어릴 때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며 “도박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잠재적으로 성인이 돼서도 도박에 탐닉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앞 문구점에서, 그것도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버젓이 도박 게임이 판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의 심의를 담당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일단 문구점측의 문제로 공(?)을 돌린다.

영등위 김규식 게임영상부장은 “영등위에 심의받을 때는 ‘전체신청가’로 신청을 한 뒤, 감시를 피해 변칙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며 “심의에는 문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부장에 따르면 현행법상 문구점 등에서는 2대 이상의 게임기를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앞 문구점끼리 경쟁이 붙으면서 규정을 넘어서고 있으며, 당국의 감시를 피한 새로운 도박 기기들이 잇따라 선을 보이고 있다. 일부 업소의 경우 아예 현금이 나오도록 게임기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영등위측의 설명이다.

그는 “심의 과정에 문제가 있기 보다는 운영에 따른 문제라고 본다”며 “유통사로부터 기기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업주들이 불법적으로 기기를 개·변조 시켜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문구점측은 불법인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공덕동 O문구점의 업주 김모씨(56)는 “다른 문구점에서 게임기를 내놓기 때문에 우리라고 안할 수가 없었다”며 “불법인 줄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일단 계도 차원에서 정화를 해나간다는 입장이다.

문화관광부 게임음반과의 한 관계자는 “미니 게임기를 설치한 대부분의 업주들이 불법인지 여부조차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다”며 “계도 기간을 거친 뒤에도 문제가 고쳐지지 않을 경우 강력하게 단속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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