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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산 게임키드, 제2의 크파 꿈꾼다!

라이트닝소프트 이훈기 대표

  • 김동욱 기자 kim4g@khplus.kr
  • 입력 2015.10.26 05:10
  • 수정 2015.10.26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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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제주의 한 초등학교 교실. 선생님은 조회 시간마다 강조했다. "여러분, 오락실에 가면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어요! 여러분의 부모님도 오락실 가는 걸, 당연히 전부 반대하실 거에요. 오락실 가는 걸 찬성하는 부모님이 있다면 손 들어보세요."

잠시 후, 한 소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 엄마는 오락실에 가서 게임하라고 동전을 주머니 가득 넣어주십니다." 순간 선생님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소년은 방과 후, 오락실에 가서 '원더보이'를 즐길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다. 엄마에게 용기를 내 말했다. "전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하고 있으면 행복해요." 엄마는 말했다. "그렇다면, 오락실에 가서 행복감을 마음껏 느껴보려므나. 네가 필요한 만큼 돈을 줄테니"

당시만 해도 제주도에는 육지만큼, 오락실이 성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게임에 맛을 들인 소년은 30분을 걸어가야 하는 머나먼(?) 오락실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어댔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던 건 말할 필요도 없던 시대였다. 오락실 출입은 그저 불량학생들이나 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했던 시기였으니 썰렁한 표정의 어른들의 눈총은 불 보듯 뻔하다.

원더보이, 게임 개발의 꿈 키우다
'원더보이'의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소년의 꿈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난 커서 꼭 누구나 즐거워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거야" 엄마는 야무진 그의 꿈을 유일하게 지지해줬다. 지금보다 더 깐깐한 사회적 인식이 청소년들을 짖누르던, 1980년대 소년 이훈기는 누가 뭐라해도 아랑 곳 없이 게임 개발의 꿈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조상대대로 300년을 제주도에서 살아왔던 소년의 집안은 누가 봐도 보수적이고 엄격할 수 밖에 없었지만, 엄마의 교육 방침은 아들의 행복을 지지하는 쪽으로 일찌감치 방향을 잡았다. 소년 훈기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돼 준 셈이다. 

고교에 진학한 소년은 성적 좋은 모범생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컴퓨터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다. 자신이 꿈꿔오던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컴퓨터 동아리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마침내, 전교 석차 상위권에 자리한 소년은 당당하게 동아리의 일원이 됐다. 그때부터 소년은 "원더보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게임을 만들어보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했다. 수많은 습작을 내고, 친구들의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 않게 성장해갔다.

기술적인 실력 뿐 아니라, 보다 시야를 넓혀 세상을 보는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하게 된 그는, 캠퍼스 생활을 하면서도 동아리에서 꾸준히 코딩을 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꿈꾸던 게임 개발과는 뭔가 방향이 어긋나고 있다는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건, 이런 게 아니었어요" 현실과 꿈의 괴리 속에서 그는 적잖게 방황하기도 했다.

 

게임키드, 서울로 가다

제주에서 오랜 터전을 잡은 터줏대감 집안의 아들이었기에, 지역사회에서 조금은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대학 졸업 후 과감하게 서울행을 선언했다. 엄마는 그 때도 그의 편이 돼 줬다.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고, 그 일을 통해 행복감을 느낀다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봐라" 그는 뛸듯이 기뻤다.
때마침, 먼저 서울의 한 게임 개발사에 입사한 선배의 추천이 이어졌다. "네 실력이 아직은 모자르지만, 서울에 작은 게임 개발사에서 배워가며, 일할 곳을 마련해뒀다"

제주산 게임키드 이훈기는 "오랫동안 꿈꿨던 게임 개발의 꿈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니, 앞뒤 잴 것도 없이 서울로 갔습니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서 좋았지만, 역시나 객지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 게임 개발자의 정규 코스라 일컬어지던 반지하에 라면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나 행복했다. 점점 늘어가는 프로그래밍 실력과 내가 코딩한 온라인게임이 PC에서 구동되며, 유저들로부터의 불만이 쏟아져도, 나름의 큰 성취감을 느꼈다.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를 모은 MMORPG '메틴'과 FPS '아바'의 주력 프로그래머로 활약하며, 게이머가 행복해지는 게임 만들기에 조금씩 다가섰다. 그러나 대중보다는 특정 타깃에 올인하려는 회사의 방향성은 자신이 꿈꾸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 콘셉트와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주 귀향, 대중 위한 게임 개발 '시동'

2013년말 무렵, 의기투합된 몇명의 개발자들과 제주로의 귀향을 감행한다. 삶의 터전을 옮겨야하는 동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는 힘닿는 데까지 그들을 지원했고 '더 나은 환경, 자유로운 개발 문화에 공감'한 친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동료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장으로서의 부담도 컸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온라인 FPS '탐욕의 전장(Double Edged Sword)'이다. 이훈기 대표는 말한다. "게임이란 엔터테인먼트는 부유한 일부 계층만이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저렴한 비용, 또는 무료로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게임입니다" 그의 개발 철학에 발맞춰, 탐욕의 전장은 클라이언트 용량을 대폭 줄이는 쪽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부실하지는 않다. 있을 건 다 있지만 쓸데없는 건 과감하게 줄이는 기획에 이 대표의 오랜 노하우가 기반이 된 프로그램 압축 기술이 활용됐기 때문이다.

라이트닝소프트의 신작FPS '탐욕의 전장'이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도 PC스펙과 인터넷 환경이 다소 뒤떨어진 남미 등지에서 이 게임을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트닝소프트는 여러 파트너 중, 영어권 시장에 강점을 가진 플레이위드와 손을 잡았다. 플레이위드는 플레이위드 라틴 아메리카(Playwith Latin America), 플레이위드 인터랙티브(Playwith Interactive)와 함께 현지에 적합한 로컬라이즈 작업을 통해 서비스하기로 했다. 플레이위드 라틴 아메리카와 플레이위드 인터랙티브는 북미와, 남미는 물론 유럽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해외 시장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훈기 대표가 꿈꾸던 글로벌 시장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셈이다.

그는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온라인 FPS '크로스파이어'를 오래 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스마일게이트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왔습니다. 국내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일찌감치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 소기의 성과를 내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저가 즐기는 FPS 게임이 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크로스파이어를 롤모델로 삼아, 제2의 스마일게이트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훈기 대표는 자신이 나고 자란 제주를 게임을 통해 전세계에 알리려는 아무진 꿈도 꾸고 있다. "아름다운 제주의 경관과 독특한 섬의 문화를 전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독창적인 스토리텔링과 그래픽으로 표현된 제주를 게임 속에 담아, 게이머의 마음 속에 제주도에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할 생각입니다." 게임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망은 성산일출봉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보다 더 강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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