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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정신과 치료 '부작용' 많다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08.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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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거주하는 대학 휴학생 김민수군(21·가명). 김군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타가 공인하는 ‘성실맨’이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할 뿐 아니라 학교 성적도 좋아 장학금을 거르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게임을 접한 후로는 성격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 수업을 빼먹는 것은 예사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회피한 채 게임에만 매달렸다. 자연히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 졌다.

김군의 부모들은 처음에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곧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들은 할 수 없이 김군을 데리고 부산의 모 정신과를 찾았다. 상담 결과 의사는 당분간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놔둘 것을 조언했다. 흥미가 떨어지면 곧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게 의사의 진단.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김군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부모의 눈치를 보는 편이었다. 그러나 상담 이후 아예 낮과 밤을 거꾸로 살며 게임에만 몰두했다. 학교나 취업 등은 이미 김군의 의식에서 사라진지 오래다.||김군은 요즘 가족 뿐 아니라 친구들과도 단절한 채 생활하고 있다. 자기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김씨가 방밖으로 나오는 유일한 시간은 가족이 외출하고 없는 낮시간대. 가족들이 있을 때는 식사도 방문에 갖다주어야 한다. 김군의 부모님은 결국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에 상담을 의뢰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이민우군(13·가명)은 아예 오피스텔을 따로 마련해 독립해준 케이스. 게임 중독 증상이 보여 정신과에 찾아갔더니 당분간 독립시킬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이군은 학교까지 거른 채 게임에만 몰두했다. 전화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부모가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렇듯 게임 중독을 치료하러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어기준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장은 “최근 들어 정신과 치료의 후유증을 문의하는 상담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게임에 대한 문화나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중고생들 중 절반 정도가 현재 게임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게임 중독 현상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 일대 중·고생 41.4%가 인터넷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한 설문조사는 상황이 어느정도인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교실은 최근 경기도 중·고등학생 7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41.4%가 인터넷 중독증세를 보였다고 밝혔다.||어 소장에 따르면 중독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부모의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요컨대 조기에 진화할 수 있는 문제를 방치해 병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독 증상을 보이는 자녀를 독립시킨 것은 오히려 아이를 사지로 떠미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게임 중독이 좀 더 발전하면 대인기피증이나 강박관념,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 증상으로 번지게 된다”며 “심할 경우 가출, 약물 남용, 고립감을 이기지 못한 자살 등의 충동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어 부모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실제 S대에 재학중인 이모군(20)은 최근 게임 중독과 우울증이 겹쳐 청담동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조사중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이군이 최근 바깥출입을 하지 않은 채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다는 부모 진술과 홈페이지 내용 등으로 미뤄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게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초보자의 경우 어느정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부모들이 지나치게 닦달을 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게임 시간을 조절하거나 자녀와 모종의 합의를 하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증상이 어느정도 진전된 상황에서 방치는 병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 소장은 “정신과 의사들중 상당수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컴맹세대들이 대부분이다”며 “컴퓨터 게임에 대한 문화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만큼 이같은 부작용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게임 중독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주문한다. 인터넷중독치료센터의 한 관계자는 “게임 중독의 부작용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공인된 진단법이나 치료법이 나와 있지 않다”며 “게임 중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표준화된 툴을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신과 의사들을 상대로 게임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 게임 중독 분야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사동에 클리닉을 개업한 한 정신과 전문의는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모든 분야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일반 진료가 외과, 내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로 분류되는 것과 같이 정신과도 전문 분야를 개설해 체계적인 연구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신경정신과개원의협의회측은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상당수의 전문의들이 적절한 처방으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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