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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이트 '아이템 복제족' 기승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06.2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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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W게임업체의 사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이 회사에서 서비스중인 실시간 전략게임의 최고가 아이템 수십개가 사이트를 통해 둥둥 떠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아이템은 얻을 수 있는 확률이 5백만분의 1도 안되는 희귀 아이템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런 아이템이, 그것도 한 개가 아닌 수십개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 게임 운영진은 순식간에 비상이 걸렸다. 자체 조사 결과 우연한 기회에 문제의 아이템을 손에 넣은 한 유저가 아이템을 복제해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측은 즉시 패치파일을 통해 문제가 된 부분을 보완했다. 그러나 반지를 수거할 뾰족한 명분이 서지 않는다. 섣부르게 대처했다가는 시스템의 허점만 만천하에 공표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업체측은 머리를 맞대 고민한 끝에 문제의 아이템을 삭제하고, 게이머들에게는 이에 준하는 게임머니를 지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앞선 지난해 말에는 게임 아이템을 복제해 1억원 가까운 수익을 올린 대학생 오모씨(21)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안산경찰서에 따르면 오씨는 M온라인 게임의 버그를 악용해 105회 가량 아이템을 복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복제한 아이템은 아이템 거래 사이트를 통해 시세보다 싸게 내놓았다. 저렴한 가격에 아이템을 판매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게이머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이렇게 해서 김씨가 벌어들인 돈은 9천4백여만원.

오씨의 화려한 외도는 그러나 이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에 의해 꼬리가 잡혔다. 오씨는 경찰에서 “아이템을 판매해서 번 돈으로 고급 승용차를 두 대 구입하고, 나머지는 유흥비로 써버렸다”고 털어놓았다.

이렇듯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아이템을 복제하는 일당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주로 게임 사이트의 시스템 취약점이나 버그를 파고든다. 때문에 게임업체들은 손도 쓰지 못한 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게이머들에게 내려오는 전설적인 일화 한토막. D온라인 게임의 고수 김성진씨(23·가명)는 아이템을 판매한 후 서버의 접속을 유지한 상태에서 다른 PC로 접속하면 이미 판매한 무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점을 이용해 며칠만에 1천만원을 벌어들였다.

물론 ‘아이템 복제족’의 상당수는 의도적이기보다는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허점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의 경우 전문적으로 시스템의 버그를 연구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안 전문가에 따르면 해커들이 게임 시스템에 침입해 아이템을 복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단한 프로그래밍 기법만 알아도 데이터를 바꿔 아이템을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면 시세보다 싸게 시중에 내놓게 된다. 때문에 게이머들에게도 지명도가 높은 편이다. 게이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기 판매의 우려가 없고 아이템도 제대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직거래를 자주 이용한다는 한 게이머는 “아이템 사기가 잇따르면서 직거래보다 아이템 중계 사이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직거래의 경우 위험 부담은 있지만 시세보다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이템 복제족의 경우 거래가 깔끔하기 때문에 게이머들이 선호하는 편이다”고 귀띔했다.

아이템 복제족의 아이디가 게이머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암암리에 전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미지가 괜찮은 아이디로 물량이 나올 경우 먼저 차지하기 위해 게이머들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게이머들의 이같은 심리를 역이용한 사기도 덩달아 늘고 있다. 사기 유형도 점차 교묘해지고 있어 게이머들의 주의가 요망된다. 아이템 복제법을 알려준다고 속인 후, 돈만 가지고 사라지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아이템 복제법을 미끼로 상대를 현혹하는 민원이 자주 접수되고 있다”며 “아이템 사기의 상당수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배틀넷에 가입돼 있는 유저들에게 “계정을 삭제한다”는 협박메일을 보낸 후 개인정보를 가로채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배틀넷 서비스 개선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다. 때문에 복제된 아이템을 소지한 유저의 아이디를 부득이하게 삭제할 예정이다. 이름, 정품사용 여부, 복제 여부, 계정아이디, 비밀번호를 기입해 운영자에게 보내라”는 메일을 뿌린다. 이렇게 해서 빼낸 상대의 계정으로 접속한 후, 아이템을 싹쓸이하는 게 이들의 수법이다.

경찰은 아이템 사기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는 만큼 게이머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정관호 경위는 “전체 사이버 범죄의 50% 이상이 온라인게임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그러나 범죄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는데 반해 유저들의 인식이 낮아 피해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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