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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사이트 통해 '사이버 돈세탁' 충격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06.1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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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학강사인 백모씨(30)는 최근 해킹을 통해 빼낸 거액의 상품권을 이용해 게임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를 구입한 후 되팔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백씨는 B상품권 사이트의 보안 허점을 파고들어 빼낸 3억원 상당의 인터넷 상품권을 사이버머니로 교환한 후, 2백조원당 현금 20∼30만원에 판매한 혐의다.

이같은 수법으로 백씨가 최근 3일 동안 벌어들인 돈은 3천만원. 웬만한 샐러리맨의 1년 연봉을 단 3일만에 벌어들인 것이다. 더군다나 백씨는 이번 범행에 제자까지 끌어들여 수사중인 경찰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D결혼정보업체의 웹사이트를 해킹해 얻은 개인정보 30만개를 이용해 사이버머니를 구입, 시세보다 값싸게 되판 조직을 적발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사이버 돈세탁’을 이용해 불과 1주일 동안에 1천만원의 거액을 벌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최근 몇주 사이에 게임 사이트를 통한 돈세탁 업자들이 잇따라 경찰에 붙잡혔다. 그동안 ‘사이버 돈세탁’ 업자들에 대한 소문이 여러차례 나돌았다. 그러나 사이버머니를 이용한 돈세탁 업자들의 실체가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게임 업계가 시행하고 있는 패키지 아이템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한게임, 넷마블, 다음 등은 최근 수익 증대 차원에서 아바타 아이템에 자사 사이버머니를 끼워파는 형식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아이템 판매가 범죄에 있어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지적이다.

아이템 구입의 제한을 두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게임 업체가 회원들의 사이버머니 소비를 장려하는 차원에서 아이템 중복 구매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이 경우 해킹 등과 같은 부당한 수법을 통해 얻은 개인정보로 아이템을 구입해도 제재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

그는 “사이버 돈세탁을 위해 같은 IP에서 수천개의 아이템을 한꺼번에 구입하는데도 업체에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며 “게임 업체가 모니터링을 통해 최소한의 조치만 취했어도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게임업체의 시스템 허점을 이용해 전문적으로 돈세탁을 알선하는 중개업자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개인의 정보를 1인당 5∼6만원에 판매할 뿐 아니라 해커들이 빼낸 사이버머니를 사들인 후, 시세보다 값싸게 판매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덕분에 게임업계는 해커들의 돈세탁 ‘중간기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업체측은 ‘배째라’식이다.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서비스를 중단할 수 없다는 게 업체측의 항변이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게임 아이템에 사이버머니를 끼워파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 방식은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에 포기할 경우 회사가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늦게나마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는 사실이다. 얼마전 업계 자정 차원에서 관련 업계 마케팅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게임 아이템 구입을 통해 사이버 돈세탁 문제가 예사롭지 않아 대책회의를 가졌다”며 “이날 회의에서 일부 아이템의 판매는 하지 않기로 서로간의 합의를 보았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단순히 아이템 몇 개 없앤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귀띔이다. 인하대 법학과 원혜욱 교수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돈세탁’이 사회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범죄조직까지 가담해 사이버머니를 통한 돈세탁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

원 교수는 “이들은 유령회사를 설립한 후, 이를 앞세워 부당하게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돈세탁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손을 쓰고 있지만 수법이 워낙 교묘하기 때문에 단속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국내의 경우 아직까지 이정도로 심하지는 않다. 일부 개인이 수익 마련 차원에서 돈세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소지는 얼마든지 존재하는 만큼 민·관이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원 교수는 “일단 한 IP에서 여러명이 한꺼번에 회원에 가입하거나 동일한 아이템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이 경우 사이버 돈세탁을 위한 사전작업일 수 있는 만큼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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