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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팸'이 위험하다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2.12.3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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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팸의 가족 구성은 대부분 비슷한 또래. 할아버지와 손자의 나이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아빠, 엄마, 삼촌 등 역할이 나눠져 있다. 마치 연극 무대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실제 직장인 김모씨(25)는 요즘 손자들 재롱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줄 모른다. 얼마전 커뮤니티 게임 고고시(www.gogosi.com)를 통해 사이버 결혼식을 올렸는데 벌써 손자가 두명이나 생겼기 때문이다. ||김씨는 회사를 마치면 사이버 공간에 마련된 집을 찾아 손자들을 만난다. 손자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데도 적지 않은 돈을 쏟아 붇고 있다. 월급의 상당수를 선물 사는데 쓰고 있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현실 세계에서는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지만 사이버 공간에는 손자까지 있는 할머니다”며 “하루라도 이들의 소식을 접하지 않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정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이렇듯 젊은층들이 사이버 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든 부모 세대와 달리 통하는 게 있다는 게 이들이 사이버 팸을 찾는 이유라고 말한다. 요컨대 사이버 팸에서는 공부를 안한다고 다그치거나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경우가 없는 장점이 있다.

대학생 김모군(21)은 “부모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이버 팸은 다르다”며 “대부분이 또래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고 고민을 털어놓아도 잘 받아준다”고 말했다.

물론 사이버 팸으로 인한 청소년 탈선 사례가 적지 않게 알려지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또래의 동질감과 현실과의 괴리를 통한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집단 가출을 하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

서울 강남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김학수 경장은 “최근 들어 사이버 팸에서 만나 가출이나 범죄를 모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이 경우 원상태로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사전에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S중학교 재학중인 안모양(14)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 안양은 평소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님의 말씀도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사이버 팸에 가입한 후로 성격이 돌변했다. 부모의 말에 토를 달거나 반항하는 등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 친구들과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안양은 결국 집을 나왔다. 부모님의 수소문으로 인해 10일만에 집에 돌아왔지만 적응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 엉망이 됐다. 공부도 더 이상 안양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안양은 결국 심각한 ‘금단 현상’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김 경장은 “한번 가출하게 되면 집에 돌아와도 적응을 못하고 다시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화를 내면 자녀들이 더 비뚤어지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가출 중 용돈을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 취업하거나 원조교제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최근 집단 원조교제를 벌인 박모양(17)과 홍모양(20)을 원조교제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양과 홍양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만난 멤버로 지난해 3월부터 월세방을 전전했다. 이 과정에서 돈을 벌기 위해 원조교제를 했다. 경찰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유흥업소에서도 여러차례 접대부로 활동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젊은이들의 일탈이 ‘핵가족 시대’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한규석 전남대 교수는 “가족간의 대화가 단절되면서 청소년들이 대안 공동체를 찾게되고, 이곳에서 심리적 지지자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가족들이나 학교에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치유책이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일부의 사례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이후 있을 파장을 은근히 걱정하는 분위기다. 한 커뮤니티 게임 관계자는 “사이버 팸에서는 현실의 부모들과 나누지 못하는 고민 등을 나눌 수 있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들은 명확한 지침이 없는 커뮤니티는 자칫하면 우발적인 사고를 저지를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용산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얼마전 관내에서 혼숙 중이던 10대가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여학생을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학생들은 자제심이나 부족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석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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