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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 '게임열풍' 분다···게임에 빠져 법관 꿈도 포기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2.11.2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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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5일 신림9동 ‘녹두거리’에 위치한 P게임방. 점심시간을 갓넘긴 대낮이었지만 실내는 빈자리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가게 한쪽에는 이곳에서 날을 샌 듯 팔을 괴고 곯아떨어진 모습도 눈에 띄었다.

PC방측에 따르면 이곳 손님들의 대부분은 인근에서 공부하는 고시생. 김지영(23)씨는 “나이 어린 학생들이 단골인 대부분의 PC방과 달리 이곳에서는 고시생들이 대부분이다”며 “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스타크래프트 등 게임을 즐긴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부의 경우 고시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핑족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게 게임방측의 설명이다. 시험에 대한 정보는 따로 인터넷으로 찾지 않아도 줄줄이 꾀고 있다는 것이다. 고시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나 포트리스.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한번에 승부가 결정나는 게임을 선호한다. 게임 시간도 1∼2시간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손님들의 경우 게임에 빠져 여러날을 보내기도 한다는 게 PC방측의 설명이다.

Y게임방의 김판주(28)씨는 “150시간 동안 쉬지 않고 게임을 하는 고시생도 봤다”며 “이쯤 되면 스트레스 해소가 아닌 중독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들은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시간 외에는 한순간도 자리를 뜨는 법이 없다. 일부 ‘열성파’는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이렇듯 최근 들어 고시생들 사이에 게임 열풍이 불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안인주(33)씨는 “여러 사람이 어울리면 자기 관리가 안되기 때문에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며 “정신 집중이 안될 때마다 내려와 게임을 즐긴다”고 말했다.

놀라운 사실은 게임 때문에 법관의 꿈마저 버리는 ‘철없는’ 수험생도 있다는 점이다. 안씨는 “게임에 빠져 목표도 잊고 PC방에 처박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렇게 쉽게 포기할거면서 뭐하러 몇 년 동안 고생하며 공부했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내보였다. 포트리스2블루 베타존에서 최고 계급에 있는 양경호(36)씨도 신림동 출신이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검은바다 롱’으로 유명한 그는 한때 청운의 꿈을 품고 신림동에서 두꺼운 법전을 뒤적거렸다. 96년 이후 1차 시험에 합격한 적도 여러번 있다. 그러나 그는 머리나 식힐 겸 게임방을 찾았다가 게임에 빠져들었다. 게임의 재미를 알게 된 그는 결국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양씨는 “신림동 고시촌 주변에만 수십개의 PC방이 있다”며 “심신이 지친 고시생들에게 이같은 환경은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자신의 지금 모습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법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남들이 우러러보는 ‘게임 고수’가 됐기 때문이다.

양씨는 “중요한 것은 무슨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이뤘느냐하는 것이다”며 “비록 사시에 합격하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얼마전부터는 건대 입구에 PC방을 차려 운영하고 있는데 인기가 좋다. ‘금왕관’이 운영하는 PC방이란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의 게이머들이 몰려들고 있다.

양씨는 그러나 대부분은 게임을 즐기는 선에서 끝낸다고 말한다. 자신과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그는 “열에 아홉은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게임을 한다”며 “게임에 빠졌더라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고시생들의 ‘게임 열풍’과 더불어 대두되고 있는 문제는 고시촌 주변의 환경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현재 신림동 일대에 PC방은 150여개에 달한다. PC방과 고시원이 마주보고 있는 경우는 그나마 양반에 속한다. 일부 건물의 경우 PC방과 고시원이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이는 목좋은 곳에 자리를 잡기 위한 경쟁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업주간 경쟁 때문에 시간당 2천원이던 사용료도 1천원까지 떨어졌다. 일부 업소의 1시간당 8백원을 받는 곳도 있어 가격 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행정고시 4년차라는 이호석(29)씨는 “게임방이 고시원 바로 밑에 있기 때문에 학원을 마친 후 고시원에 올라가기 전에 게임방을 안들를 수가 없다”며 “습관적으로 게임을 하는 것도 이런 환경이 어느정도 원인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덕분에 인근 만화방이나 당구장, 비디오방 등은 요즘 매출이 줄어 걱정이다. 비디오방 ‘영화사랑’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고시생들이 당구장이나 비디오방 등에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요즘은 다르다”며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30% 이상 준 것 같다”고 푸념했다.

물론 ‘고시 메카’ 신림동의 모습이 모두 위의 예와 같은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만난 한 고시생은 “제가 얘기하는 지금 이순간에도 경쟁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있다”며 “일부의 일을 전체의 일인양 확대시키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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