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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동냥'> 아이템 삥뜯는 '사이버 거지' 판친다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2.10.1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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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머니의 앵벌이가 가장 많은 곳은 포커 등과 같은 보드 게임. 이같은 게임에서 사이버 머니는 권력과 직결된다. 사이버 머니가 많은 사람은 게이머들이 우러러보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반면 돈이 없는 게이머들은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된다. 게이머들이 만사를 재쳐두고 앵벌이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국내 대표 보드게임 사이트인 한게임. 이곳 게시판에 접속해 보면 사이버 머니를 구걸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부 네티즌의 글에는 "그만 좀 하라" "니가 거지냐" 등의 투정 섞인 리플이 올라와 있는 모습이 눈에 띤다.

레벨이 '초인'이라는 이모씨(29)는 "게임을 하다 보면 '사이버 머니 좀 달라'고 보채는 사람들이 많다"며 "자유경기장에서 수혈을 하면 쉽게 고수까지 오를 수 있는데도 구태여 경기장에까지 찾아와 귀찮게 한다"고 토로했다.
일부 비뚤어진 게이머의 경우 욕까지 일삼는다. 이씨는 "원하는 대로 수혈을 해주지 않으면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욕으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든다"며 "사이버 공간이라고 하지만 이같은 경험을 할 때마다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리니지와 같은 전쟁 게임이나 일부 아바타 게임에서도 앵벌이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곳에서 사이버 머니는 칼과 창 등 무기를 살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돈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아이템이나 사이버 머니를 미끼로 청소년들을 노리는 언조족(본보 3월5일자 참조)도 덩달아 활개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경찰청이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성매매 사범 107명 중 2% 정도가 게임사이트를 통해 접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한 개 수십만원씩 하는 고가 아이템을 준다고 유인해 청소년들의 몸을 유린한다. 아바타를 꾸며주는 조건으로 성을 거래하기도 한다.

대구경찰청 서태하(53) 계장은 "게임 사이트의 경우 청소년들의 접속이 많기 때문에 이같은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엄격하게 단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아이템 만능주의'에 빠진 청소년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일부 사이버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요컨대 사이버 공간에서의 질서나 체계가 자리잡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도기적 현상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전문가들은 방치할 경우 제2, 제3의 부작용으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이버중독정보센터의 운영자 김은성씨는 "사이버 머니를 현금으로 바꿀 경우 꽤 짭짤하기 때문에 앵벌이에 나서는 청소년이 많다"며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 사이버 머니 때문에 가출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일부 청소년들이 실제 돈을 구걸해 경찰 조사를 받는 등 부작용의 여파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김해경찰서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구걸 행위를 벌여 270만원을 적선 받은 윤모군(19)을 사기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군은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후, 30대 네티즌으로부터 각각 10만원씩 챙겼다.

얼마전에는 "아내가 미숙아를 낳다가 생명이 위독하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려 5백여명으로부터 8백여만원을 받은 모자가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신용카드 연체로 7백만원의 빛을 지자 고민 끝에 인터넷 구걸 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종전에는 구걸 행위가 사이버 머니나 아이템 정도에서 머물렀으나 최근 들어 실제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앵벌이 수법도 점점 지능화 되고 있다. '눈먼돈'을 얻기 위해 조폭들까지 가세하는 등 규모도 점차 조직화되는 추세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최근 동거녀를 이용해 인터넷에서 구걸 행위를 한 조직폭력배 김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의 사기 수법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김씨는 우선 동거녀와 짜고 한 인터넷 사이트에 "성폭행 당해 낳은 아이가 선천성질환으로 광주 모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도 병원측은 입원비 수거에만 혈안이 돼있다"는 'SOS성 글'을 타전했다.
물론 김씨는 네티즌들로부터 돈만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글을 본 네티즌들이 청와대에 진정을 올리는 등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자 김씨는 조직원을 시켜 "○○일보가 미혼모를 또한번 죽이려 한다"며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

북부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현금을 요구하는 행위는 사기일 가능성이 많다"며 "동정심에 이끌려 이들을 도왔다가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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