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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스토커'와의 전쟁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2.09.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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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가 가장 많은 곳은 바둑이나 고스톱 등 온라인 보드게임. 이같은 게임은 진행 속도가 느리고 채팅도 겸할 수 있기 때문에 스토킹이 많은 편이다. 게임을 하다가도 상대방이 여성이라 느껴지면 주저없이 음란한 내용의 쪽지를 보낸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다는 김모(42)씨는 “게임을 하던 딸아이 방에 비명이 들려 가보니 ‘누나, 지금 무슨 팬티 입었어요’ ‘누나의 벗은 모습이 보고 싶어요’ 등의 낯뜨거운 글이 올라와 있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김씨는 “상대가 초등학생이라 따끔하게 혼내주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개운하지가 않다”고 말한 뒤,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되풀이된다면 무언가 액션을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의 경우는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최근 들어 게이머들의 스토킹 수준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유언비어성 음해나 욕설은 기본이다. 집이나 회사까지 쫓아가 협박을 하는 것으로 밝혀져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최근 유료화로 전환한 L게임이 대표적인 예.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인 이곳은 게임의 특징답게 악질 스토커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게임은 사이버 공간에서 또다른 인생을 경험하는 가상 사회생활 게임.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통해 돈을 번 뒤, 아바타를 꾸민다. 맘에 드는 이성이 있을 경우 사이버 공간에서 결혼할 수도 있다.
이같은 아기자기함 때문에 게임에 접속해보면 유독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많은 편이다. 이 게임이 유난히 스토커들이 들끓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회사측에 따르면 한사람이 1천명 이상으로부터 ‘찜’을 당한 경우도 있는데 이들이 스토커들의 주요 표적이 된다.
물론 원하지 않는 남성이 집적거릴 경우 ‘원수’로 설정하면 스토킹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토킹 방지를 위해 마련된 방패가 오히려 스토킹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게이머들의 말이다. ID가 ‘**사랑’인 게이머는 “귀찮다고 원수로 설정해놓았다가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괴롭힘을 당한다”고 귀띔했다.
전화번호를 알아내 수시로 전화를 하거나 집까지 쫓아오는 경우도 있다. 일부 악질 스토커의 경우 ‘매춘 상대를 구한다’는 글귀와 함께 전화번호를 공개, 음란전화가 쏟아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 홈페이지 관리자에 의해 바로 삭제 당하는 게 보통이다.
다른 게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집요한 언어폭력과 상상을 초월하는 유언비어성 음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급한 나머지 ‘스토커 차단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는 게 게이머들의 지적이다. ||온라인 RPG게임을 운영하고 있는 C사의 경우 키워드 필터링 방식의 언어폭력 방지 프로그램을 통해 스토킹 피해자를 줄이고 있다. 요컨대 욕설에 해당하는 단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게이머가 저장된 욕설을 입력했을 경우 경고음이 뜨는 방식이다. 상습적인 언어 폭력범의 경우 아예 계정을 취소시켜 버린다.
그러나 유료 게임이나 신생 게임의 경우는 운신의 폭이 넓은 편이 아니다. 게임안에 ‘감옥’을 만들어 이곳에 ‘캐릭터’를 가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곧바로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N사의 한 관계자는 “동음이의어 등 욕설이 점차 지능화 되고 있어 쉽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얼마전에는 가능한 모든 욕설 키워드를 제한했다가 사용자들로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학부모정보감시단의 주혜경 단장은 “사이버 스토킹은 단순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아니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문제다”며 목소리를 높힌다. 주 단장에 따르면 얼마전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남학생들의 성폭행을 피하려다 여고생이 자살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덮치려하자 놀란 여고생이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한 것. 친구의 자살 소식을 접한 다른 여고생도 이튿날 비관자살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상당수 게이머들이 스토킹의 위해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사이버문화연구소 민경배 소장은 “스토킹의 폐해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은 자신이 스토킹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며 “다양한 루트를 통해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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