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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사이트만 위험지대 아니다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2.08.0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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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 경남 사천시 정동면 C아파트. 조용하던 아파트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의 시신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의 소년은 이 아파트에 사는 하모(13)군인 것으로 밝혀졌다.
놀라운 사실은 하군의 사인이 자살인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진 것. 경찰에 따르면 하군은 이날 아침 어머니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집에 혼자 남아 컴퓨터 게임을 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자살 충돌이 생겨 투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군의 사건이 있기 몇 달전인 2001년 7월. 서울 강남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강남 K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이모(16)군이 2층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한 것. 경찰에 따르면 이군은 평소 성실하고 부모말도 잘듣는 ‘범생 타입’이었다. 성격도 원만해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그런 그가 자살이라는 ‘말도 안돼는’ 카드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 조사 결과 이군 역시 평소 컴퓨터 게임에 자주 접속했는데, 사건이 있었던 날 오전 게임을 하다 어머니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같은 진술 등을 감안해 이군이 컴퓨터 게임을 하다 우발적으로 자살을 결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들어 온라인 게임을 통한 청소년들의 자살이 늘고 있다. 종전가지 10대들의 자살은 자살 사이트를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게임 접속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게임으로까지 유혹의 손길이 뻗치고 있는 것.
문제는 게임 사이트를 통한 자살의 경우 언론을 통해 알려진 ‘동반자살’ 등과는 차별화 된다는 점이다. 자살 사이트의 경우 보통 오랜 준비를 거쳐 거사 날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이 실행에 옮기기까지 보통 1주에서 1개월이 걸린다. 그러나 컴퓨터 게임을 통한 자살은 우발적인 경우가 많다. 충동에 의해 순간적으로 실행에 옮겨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전문가들은 ‘Reset(리셋) 증후군’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리셋 증후군’은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10대 및 20대에 주로 발생하는 신종 질병. 컴퓨터 게임이 리셋 버튼을 통해 모든 것이 복구되듯 실제 생활도 그렇게 되는 것으로 믿는 정신병의 일종이다.
물론 이같은 질병을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러나 방치할 경우 심각한 병으로 치달을 수 있다. 요컨대 죽음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게임의 한 장면쯤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 이 경우 심하면 순간적으로 자살 충동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정신과 전문의들의 귀띔이다.
실제 서울아산병원 정신과의 홍진표 교수는 비숫한 진료 경험을 털어놓았다. 현재 미국서 유학중인 홍 교수는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10대를 진료한 적이 여러번 있는데,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인간은 누구나 ‘자살 충동’이 있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며 “그러나 리셋 증후군에 빠질 경우 조그만 자극만으로 곧바로 자살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병원 정신과의 박종익 교수는 온라인 게임이란 특수한 환경으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네트웍으로 연결된 환경 때문에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자살을 부추기거나 자살 심리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 박 교수는 “자살하는 사람이나 자살자의 성향을 보면 대체적으로 내향적이거나 폐쇄적인 경우가 많다”며 “이같은 성향은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온라인 게임이나 자살 사이트의 잠재 위해성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고 진단한다. 더 방치할 경우 ‘제2의 자살 사이트’ 혹은 ‘자살 사이트 이상의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이명수 정신과 전문의는 단속에 앞서 예방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살 사이트가 없어진다고 10대들의 자살이 근본적으로 주는 것은 아니다”며 “우선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도봐줄 수 잇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인터넷 자살사이트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여 80개 사이트를 폐쇄했다. 이 과정에서 자살 의사를 가진 학생 20여명도 계도활동을 통해 최후의 사태는 막았다.
이 관계자는 “무조건 못하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며 “자살 사이트 단속과 함께 청소년들의 의식도 계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주변 사람에게 표시를 하게 돼있다”며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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