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사채 주의보!
고리사채 주의보!
  • 이석 프리랜서
  • 승인 2002.06.25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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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직장인 이모(26·여)씨는 최근 게임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큰 낭패를 당했다. 결혼 준비로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게임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카드빚을 해결해 드립니다”라는 글을 본 것이 화근이 된 것. 그렇지 않아도 혼수 준비로 자금이 딸렸던 이씨로써는 이 글이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게시판에 적인 도메인을 클릭하자 곧바로 해당 사이트로 이동했다. 이씨는 우선 인터넷을 통해 상담을 받은 후 5백만원을 대출 받았다. 대신 선이자 및 수수료를 포함해 6백만원을 10일안에 갚을 것을 약속하는 차용증을 썼다.
그러나 이 영수증이 족쇄가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상환기일인 10일을 몇 번 연장하고 나니 빚은 어느새 1천만원으로 불어났다. 이씨에 따르면 이때부터 얌전하던 사채업자들의 본색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회사로 찾아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가 하면, 돈을 갚지 못하면 윤락행위를 시켜도 좋다는 ‘윤락행위승인서’ 작성을 강요한 것.||김씨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며 이마를 쓸어 내렸다. 결혼할 남자친구 몰래 돈을 갚느라 진땀을 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씨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될 수 있으면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길 권한다”고 충고했다.
이렇듯 최근 들어 게임 사이트를 통해 사채업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마치 금융상식을 전달하거나 새로운 금융상품을 소개하는 것처럼 포장해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요컨대 ‘나만의 재테크 비결 공개’ ‘금융권 신상품 소개’ 등의 글을 게시판에 올린 뒤 클릭하면 자사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여기에 현혹돼 사채업자를 찾아갔다가는 어둠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 관계자의 우려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급한 마음에 급전을 썼다가 연 150∼300%에 해당하는 고리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금감원에 접수된 관련 피해신고만 4천여건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사채업자에 대한 경찰 및 금융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들이 비교적 활동이 수월한 사이버 공간으로 숨어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사이트의 경우 국내에 뿌리를 내린 지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간섭이 비교적 덜하다. 여기에 더해 게임을 하는 계층 대부분이 10∼20대의 젊은층이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들이 사냥감으로 선정하는 주대상은 신용카드를 연체한 대학생들. 이들은 대학생들의 심리 상태를 기차게 간파해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 요컨대 신용카드를 담보로 대금을 대신 갚아준 후 정지된 카드가 되살아나면 이자 및 수수료를 얹어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 이때 적용되는 금리는 월 10∼30%. 연리로 따질 경우 무려 360%에 달하는 고리인 셈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여신전문금융법에 따르면 카드대납 대출시 신용카드를 담보로 맡거나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상당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신용카드를 내맡기고 있다. 이 경우 피해를 입어도 카드사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선이자나 취급수수료를 먼저 요구한 후 이를 챙겨 달아나는 이른바 ‘삥뜯기’ 사례가 늘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끌어다 쓸 경우 돈을 받기 전에는 수수료나 이자를 주지 말 것”을 충고했다.
사채업자를 통해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누출되는 경우도 있다.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대납 사이트를 이용하다 자신의 금융정보가 공개되는 어이없는 사고가 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업계에서는 게임을 이용하는 대상 중 상당수가 아직 경제적 자립도가 없는 대학생이거나 미성년자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물론 현행법상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대상을 가출 청소년 등으로 확대할 경우 결국 이 법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온라인 RPG게임을 운영하는 W사의 김모 팀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돈을 끌어쓴 청소년들을 상대로 악덕 사채업자들이 ‘윤락행위동의서’를 받아 티켓다방이나 윤락가로 넘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있냐”며 관계 당국의 성의있는 조사를 요구했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들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를 갚지 못해 신체포기각서나 윤락행위동의서를 쓰는 사례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또 연체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해결사들이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된 사례로 600건이 넘는다.
문제는 이자율 한도를 정한 대부업법이 여러해 동안 국회에서만 표류하고 피해자가 절절한 구제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이자율 한도를 30∼90%선으로 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범은 국회 재경위를 통과한 이후 법사위 심사에 막혀 갈팡질팡하고 있다. 물론 금융당국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위반 사례를 적발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등 정책에 극도의 혼선을 빚고 있는 것.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통해 부당 사례를 여러건 적발했지만 자체적으로 제재하면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혼선을 빚을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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