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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게임-슈라우디드 아일]‘죽은 자’가 구원하는 ‘산자’들의 세계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17.08.28 15:55
  • 수정 2017.08.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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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관에 보내는 도전장
- 경영시뮬레이션 탈을 뒤집어 쓴 멘탈 케어 프로젝트

지금으로부터 497년 전. 세계는 멸망했다. 이 세계를 창조해낸 창조주는 세상을 저버렸다. 피의 축제 혹은 구원의 날. 그리고 인류는 교훈을 얻었다. 인류는 나약했다. 오직 창조주의 뜻을 따르고자 종교를 세운다. 그리고는 생존을 향해 몸부림친다.
여기 한 인류는 작은 섬에 모여 신의 뜻을 따르는 삶을 이어 나간다. 그들은 ‘창조주’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좋든 싫든 앞으로 3년이 지나면 모든 일이 결정된다. 정확하게 구원의 날로부터 500년이 되는 해 인류는 다시 한 번 심판대에 오른다.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피의 축제’속에 멸망할 것인가. 인류는 고위 제사장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한다.
 

 

제물을 바치라. 신은 잔인했다. 앞으로 3년간 매 계절마다 인간 한명을 죽이라 요구한다. 이유는 모른다. 신이 그러라했다. 그의 뜻을 다르지 않는 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어떻게든 앞으로 3년만 더 버티면 된다. 그러면 최소한 그 다음 500년은 살아남을 수 있다. 제사장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이 곳 ‘슈라우디드 아일’을 대표하는 5대 가문을 모았다. 그들은 무조건 제사장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각 계절마다 한번 씩 제사장은 죽어야 할 자를 결정해야할 처지에 놓인다.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제사장은 고뇌한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는 자 조차 ‘살 권리’를 받는 세상에서 멀쩡한 사람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제사장은 인간의 목숨과 죄를 놓고 신의 권리를 대행한다. 조금이라도, 아주 작더라도 잘못은 잘못. 인류의 생존을 논해야할 시기에 관용은 사치다. 특히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할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제사장은 5대 가문에 소속된 이들을 조사해 잘잘못을 가리기로 선택한다. 각 가문별로 소속된 인원은 6명. 총 30명을 상대로 철저한 조사가 이어진다. 한 계절 안에 각 가문 당 1명씩 성격을 파악하고 문제를 파헤친다. 티끌만한 잘못이라도 파헤치면서 ‘조금이라도 더 적합한 희생양’을 찾아내야 한다.

고통 속에서도 삶은 피어나고
끔찍한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삶이 피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인간은 이마저도 적응했다. 인간은 먹고, 자는 행동을 거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 와중에도 5대 가문은 제사장에 의지했다. 어떻게든 신의 눈 밖에 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아니, 당장 3년 동안은 신 보다 제사장이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제사장은 각 가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삶’을 이어 나가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듣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곳 ‘슈라우디드 아일’을 대표하는 5대 가문은 케그니(무식함), 요셰프카(열정), 케드웰(규율), 에펄슨(참회), 블랙본(순종) 가치를 대변한다. 케그니 가문은 ‘아는 것’이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단순한 삶을 강요한다. 때문에 책을 태우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덕분에 규율을 준수하고 참회를 원하는 케드웰 가문과 에퍼슨 가문과는 궁합이 맞는다. 반대로 자유로운 열정과 예술이 삶의 행복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요셰프카 가문은 책을 태울 때마다 고통 받는다. 한 가문이 자신의 고집을 관철하면 다른 가문은 끔찍한 삶을 살게 된다.

‘죄의 무게’를 재는 자
사람살이가 늘 그렇듯 어딜 가나 사람들이 모이면 꼬이기 마련이다. 이들 가문들도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서로 불만이 쌓여 간다. 때로는 한 가문이 두 계절 연속으로 처형될 때도 있고, 무고한자 혹은 ‘죄의 무게가 덜한 자’가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때 마다 이들은 마음속 불안을 토로한다. 불안이 거듭되다 보면 불만이 되고, 불만이 거듭되다 보면 분노를 낳는다.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섬 전체로 퍼지고, 인류는 ‘심판의 날’을 맞이하기도 전에 ‘피의 축제’를 보게 된다.
 

 

이런 환경이라면 제사장도 무사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공평한 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꼭 한가문은 문제를 일으키게 돼 있다. 어딜 가나 인간이 가장 문제다. 어떤 인간은 너무나도 무능력한 탓에 자신의 가문이 추구하는 바를 철저히 배신하고 다른 가문을 따른다. 그렇다 보니 만족도가 개선돼야할 가문은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고통 받는다. 어떤 인간은 능력은 출중하나 저지른 죄악이 심각하다. 딜레마는 여기에서 온다. ‘무능력’은 죄가 아니다. 그를 처벌할 명분은 없다. 그러나 살려두면 가문은 고통 받는다. 반대로 ‘능력자’는 큰 죄를 지었다. 그를 처벌할 명분은 있다. 그러나 살려두면 가문은 행복하다.
그 수많은 질문의 구렁텅이에서 해답을 내야 한다.

존재의 의미를 돌이켜 보다

‘슈라우디드 아일’은 게임이다. 아무 생각없이 수치 바만 보고 일단 채워넣으면 클리어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개운하지만은 않다. 멀티 엔딩으로 그 결과물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수 있다. 다행히 개발자도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면죄부를 던져두기도 했다. 나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이다.
 

 

오직 게임 그 자체로만 바라본 ‘슈라우디드 아일’은 잘 짜여진 심리 게임을 보는 듯하다. 가치의 문제를 모두 떠나서라도 기가 막힌 밸런스를 잡아 내 쉽게 ‘해피엔딩’을 내어 주지 않는다. 때때로 주어지는 돌발 미션들과, 신의 지시를 모두 처리 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플레이 하게 된다. 다만 상대적으로 전체 플레이타임이 짧은 편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는다.
‘슈라우디드 아일’은 오는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되는 ‘BIC 2017’에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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