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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판 '제2의 하리수' 뜬다 - 여장 남성게이머들의 이중생활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2.06.1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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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모(22)군은 요즘 게임하는 재미에 푹빠졌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고수들이 알아서 ‘수호천사’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군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준다. 고가의 아이템을 내주거나 ‘몸빵’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다.
덕분에 김군은 단시간 안에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진귀한 아이템도 꽤 수집했다. 그러나 고수들의 ‘지원 사격’을 받으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는 게 김군의 설명. 그는 “생면 부지인 고수들이 저같은 초짜를 도와주는 저의를 모르겠다”며 부담감을 토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혹시 말로만 듣던 사기꾼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김군이 이들의 속내를 눈치챈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한 게이머로부터 “얼굴이 궁금하다. 밖에서 한번 만날 수 있느냐”는 내용의 쪽지를 받은 것. 김군은 뒤늦게 자신이 여동생의 아이디로 게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때부터 묘한 쾌감을 느꼈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김군은 또 자신을 여자로 위장하기 위해 예쁜 여성 아바타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세대 여성의 말투가지 배웠다.
이처럼 최근 들어 여성을 사칭해 아이템을 뜯어내거나 고수들의 보호를 받는 ‘몰염치한’ 게이머들이 늘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 연구자료는 없지만 상당수의 남성 게이머들이 여성으로 위장해 사이버 공간을 휘젓고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물론 일부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여성 행세를 하기도 한다.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징을 이용해 재미 삼아 변장한 사례도 왕왕 들려온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더 볼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남성 고수들에게 기생하기 위해 여성을 사칭하는 얌체가 대부분이다. ||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은 “잘하는 사람의 보호를 받을 경우 비교적 쉽게 고수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며 “이 경우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한다고는 하지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여성 게이머들의 ‘희소성’이 이같은 추세를 부추기는 것으로 파악한다. 온라인게임 커뮤니티인 ‘포립(4leaf)’을 운영하는 소프트맥스 이진희 고객지원팀장은 “온라인 게임의 경우 대부분 여성보다 남성의 숫자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한다”며 “이같은 현실이 여성을 하나의 권력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게임의 길드가 대표적인 예. 이곳에서는 ‘여성들의 숫자=파워’라는 수학적 개념이 확실하게 통한다. 여성 길원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면 길드 가입 요청이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고랩들도 상당수 묻어 들어오기 때문에 길드 전력을 강화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일단 게임에 접속해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어딜 가도 여성들을 쫓아 구애를 벌이는 남성 게이머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관심이 없다가도 여성 게이머들의 ‘아이잉∼’ 한마디면 남성들의 경계심은 눈녹듯이 녹아 내린다. ||실제 지난 5월 29일 판타지 온라인 롤플레잉(MMORPG) 게임인 ‘라그나로크’. 2백만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이 게임은 3D 배경과 아기자기한 캐릭터 때문에 남성보다는 여성 게이머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게임에 들어가자 우선 하트 이모티콘을 날리며 여성 게이머들을 유혹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물약을 먹어 가며 ‘몸빵’을 하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눈에 띠었다.
이같은 풍경은 게임을 통해 만난 커플이 열애 끝에 결혼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이후 급증하는 추세다. 직장인 게이머 신홍석(28)씨는 “자신이 다치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오는 점이 마음에 들어 결혼했다는 신부의 말 이후 무대포 게이머들이 더욱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이버 공간이지만 여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남성들의 노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무늬만 여성’인 남성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여성으로 위장해 갖가지 혜택을 누린다. 아이템만 받고 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서경대 정영화 교수는 “여성으로 위장 접근한 뒤 원하는 아이템을 얻으면 곧바로 빠지는 게 이들의 주요 전략이다”며 게이머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여성 아이디나 아바타를 얻기 위해 집안에 있는 여자들의 주민등록번호는 다 끌어 모은다. 여동생은 물론이고 고모, 이모, 심지어 할머니 주민번호로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 교수는 현재 이들의 실태 파악을 위해 연구를 진행중이다.
심리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에 대해 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의 김진세 원장은 “우리 아이들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전제한 뒤, “오프라인에서 튀지 못한 애들이 가상공간을 통해서라도 튀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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