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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4인 인터뷰 ④]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산업·문화 측면 거시적 접근 ‘필요’”

합의 없는 일방적 추진 악영향 ‘초래’ … 부처 이견 조율·긍정 효과 연구 ‘과제’

  • 정우준 기자 coz@khplus.kr
  • 입력 2019.05.23 14:32
  • 수정 2019.05.2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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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753호 기사]

5월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판가름할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의 막이 올랐다.
국내외 게임업계와 학계, 의학계, 문화 협·단체들이 해당 안건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안건이 최종 처리될 경우,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 따라 의료 현장에서 ‘게임중독’을 진단할 의학적 기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특히 2025년부터는 관계부처 논의와 전문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과학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부족하고, 과잉 의료화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콘텐츠 산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게임 생태계가 심각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이에 본지는 그간 게임에 대한 연구 및 활동을 이어온 서태건 가천대학교 게임대학원장,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등 학계 전문가 4인을 만나,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Q. 5월 20일 개막한 WHO 총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의견은?
A.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진단기준 없이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의 기준을 그대로 차용해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부분적인 공통점을 일반화시킨 진단은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WHO가 말하는 게임과 현재 게임산업 및 문화 사이의 괴리가 존재합니다. 이제 게임은 하나의 콘텐츠를 넘어, 드라마·영화·음악·웹툰 등과 결합된 융합형 콘텐츠화가 추세입니다. 이런 콘텐츠에 대한 몰입을 장애로 취급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몰이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과잉의료화의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변수와 마찬가지로, 게임이용과 관련한 문제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해당 문제는 다양한 원인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만약 ‘게임이용장애’가 공식 질병화되면 병원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로 인식되고, 부모·교사·지역사회는 손 놓고 정신의학계에 맡겨버리는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게 됩니다. 

Q. 만약 ‘게임이용장애’가 도입된다면, 게임산업을 비롯해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나?
A.
과학적, 합리적 연구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은 사회를 좋은 쪽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게임은 앞으로 일어날 많은 일들의 원인으로 지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범죄나 비행의 원인을 게임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 경감에 아주 손쉬운 방법입니다. 또한 많은 게임과몰입 이용자들은 우울증·불안장애·스트레스장애·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공존질환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임이용장애’가 등장하는 순간, 공존질환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 게임이 아니기에, 오히려 문제를 감추고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울러 적극적인 정책과 우수한 인력, 투자가 위축돼, 4차 산업혁명 시대 경쟁에서 우리사회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뒤쳐질 수 있습니다. 결국 ‘게임이용장애’는 현재의 불안을 이유로 미래의 발전을 저해하는 자해행위와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Q. WHO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으로 정확한 진단 및 연구,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이에 대한 의견은?
A.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자살이나 왕따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는 질병코드 없이도 연구와 예방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연구를 충분히 해서 질병코드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타당한 접근이지, 연구를 위해 질병코드를 도입한다는 이야기는 본말이 전도된 격입니다.
여기에 ‘게임이용장애’가 공식 질병화되면, 진단이나 치료와 함께 예방이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예방의 영역에서는 약 3%의 ‘게임이용장애’ 이용자들을 위한 기준이 나머지 97%에게도 적용됩니다. 즉, 잠재적인 환자취급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특히 예방 프레임이 작동하면, 장애가 공식화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예방활동이 잘된 결과로 해석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Q. 현 상황에서 게임업계를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 학계, 이용자들이 실천 및 참여할 수 있는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A.
앞으로 게임의 산업적, 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과도한 정신보건학적 파악이 옳지 않다는 점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게임이용장애’ 반대 국민청원 같은 방법도 가능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게임산업은 다양한 규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의견은?
A.
수면권이나 뇌 연구에 대해 밝혀진 사실은 없고, 오히려 게임이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행위를 신경생물학적으로 환원하는 것은 사람을 고깃덩어리로 취급하는 아주 단편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심리학적·사회학적 측면의 인문학적이고 거시적인 접근을 함께 해야 할 때라고 판단됩니다.

Q.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란과 관련해,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다면?
A.
역사적으로 블랙코미디는 반복됐습니다. 근대 초기 의료처방 중 사혈법을 비롯해 근래의 동성애나 성전환 현상들에서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사회적 고정관념을 반영한 의료적 행위가 있었습니다. ‘게임이용장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은 후세에게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경향게임스=정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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