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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시대를 말하다 … 게임 문법으로 표현하는 한국 근현대사

독립운동, 4.3항쟁 등 소재 게임화 ‘도전’ … 다각화 통해 신시장 ‘토대 마련’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0.06.0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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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777호 기사]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외산 판타지, 무협 등 고정적인 소재에서 한발 벗어나 새로운 소재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인다. ‘삼국지’나 ‘로마 시대’가 소재로 나오듯 한국에서도 전 세계에서 주목할만한 킬러 콘텐츠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가운데 뜻있는 개발사들이 나섰다. 한국 근현대사를 소재로한 게임들이 잇달아 공개돼 유저들을 찾아간다. 일제강점기 치하 독립운동을 소재로한 게임에서부터 제주 4.3사건까지 역사적 사건들을 게임에 담았다.
게임 자체로서 재미는 물론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교육적 기능과, 시대적 상황을 전달하는 문화 및 예술적인 기능들을 가진 콘텐츠로 새로운 활로를 뚫겠다는 이야기다. 게임인재단 안병도 국장은 “한국의 미와 한국사들과 같은 소재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시도한다면 언젠가는 세계에 통할만한 콘텐츠를 만 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이를 활용하고자하는 시도 자체가 곧 업계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보고 지원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역사를 기반으로 게임을 제작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많이 시도되고 있다. 중국은 대표 문화 콘텐츠인 ‘삼국지’가 있고, 일본은 ‘전국시대’를 소재로한 ‘신장의 야망’시리즈를 선보인다. 우리나라도 ‘충무공전’이나 ‘거상’과 같은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근현대사를 다루는 게임들도 분명히 있다. ‘세계 2차대전’을 다루는 밀리터리 게임이나 이탈리아 ‘마피아’를 소재로한 갱스터 장르 등도 유명한 소재 중 하나. 같은 맥락에서 ‘전쟁’의 아픔을 알고, ‘독립’과 ‘분단’을 기억하는 한국 근현대사도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하에 국내 게임 개발사들이 근현대사 게임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게임으로 ‘시대 상황’ 체험
국내 게임개발사 자라나는 씨앗은 ‘맺음’ 브랜드를 통해 ‘스토리’에 기반한 게임 개발에 주력하는 기업이다. 주로 횡스크롤 방식으로 주변을 탐험하며, 단서를 모아 스토리를 따라가는 형태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이번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그린 게임 ‘페치카’를 선보인다.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김알렉산드라, 이위종 등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한 인물이다. 개발진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성공하기 전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의거를 계획했고 활약했음에 주목했다. 가상의 주인공 ‘표르트’를 선보여 시대와 인물을 간접 체험하게 했다.
 

▲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모델로 시대를 들여다본다 ‘페치카’
▲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모델로 시대를 들여다본다 ‘페치카’

그 시절 어디에다 먹을 것, 입을 것 부족한 시대에서 타국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 오직 살아가는 게 우선이었던 사람들의 갈등과 고뇌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게임으로 녹였다. 자라나는 씨앗 김효택 대표는 “게임은 세계를 간접 체험해볼 수 있는 콘텐츠로 시대를 산 것 같은 경험을 해주게 하는 매력이 있다”며 “‘애국’에 호소하기보다는 시대 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면서 그 시대 사람들 의 고뇌와 선택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게임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요즘 시대 사람들이 고민하듯 그 시대사람 들도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이야기했다. 치열한 고민 사이에 ‘선택’하게 되며, 이 결과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게임적인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전해 듣는 이야기’ 제주 4.3사건의 비극
인디게임 개발팀 COSDOT은 제주 4.3사건을 다룬 게임 ‘언폴디드’를 선보이는 팀이다. 이미 모바일게임으로 관련 시리즈 2종을 개발했고, 올해 말 스팀을 통해 정식 출시를 목표로 게임을 개발 중이다. 이들이 표현하는 4.3사건은 가상의 화자 ‘동주’를 통해 진행된다.
동주는 임신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학생. 어머님 부탁을 받아 마을을 돌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잔심부름을 하다가 ‘4.3사건’의 전초를 발견하고 어머니와 함께 애써 사건 현장을 탈출하려는 과정을 담는다. 충격적인 체험을 고스란히 담아 표현했다.
 

▲ 평범한 소년에게 찾아온 비극 ‘언폴디드’
▲ 평범한 소년에게 찾아온 비극 ‘언폴디드’

이들은 4.3사건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게임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비극적이고 두 번 다시 일어나야 하지 않을 이야기지만 세계 사람들도 공감하고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봤다.
꺼내기 힘든 이야기고 부끄러운 역사지만 난징대학살이나 홀로코스트와 같은 일들도 기억함으로서 재발을 막는 효과도 분명히 있다. 실제로 해외 관련 기념재단들은 가상현실 체험 콘텐츠나 전시회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한다. 게임으로서도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재발을 방지하는 문화적 기능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시 쓰는 역사’로 희망의 메시지
겜브릿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게임’이라는 매체를 택했다.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하는 시위를 게임 제목으로 삼아 ‘더 웬즈데이’를 개발 중이다.
이들은 고 김복동 할머니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동료들을 꼭 구하고 싶다”고 한 말에 감명 받아 게임을 개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겜브릿지는 ‘여러 매체 중 게임만이 오직 행동으로 개입할 수 있는 매체’라고 보고 이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변화를 꾀했다.
 

▲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더 웬즈데이’
▲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더 웬즈데이’

유저는 가상의 주인공 ‘순이’가 돼 1945년도로 돌아간다. 그 시절 일본군이 폐기했던 자료들을 복구하고 동료들을 소명해 구하는 내용을 근간으로 삼는다. 피동적인 내용 보다는 ‘희망’과 ‘기억’에 초점을 맞추는 셈이다. 하지만 게임 속 내용들은 모두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삼는다.
강제 노역, 채혈, 수탈 등 태평양 전쟁 당시 실제로 일어난 일이 게임 속에서 등장한다.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모션 캡쳐를 동원했고, 장기간 논문과 문헌 조사를 통 해 역사적 사실을 게임 화하는데 주력했다. 이들은 이 게임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 ‘위안부 문제’를 보다 자세히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역사 고찰로 ‘각광’
헝가리 출신 예술사학자 아놀즈 하우저는 ‘모든 예술은 그 시대의 반영’이라고 표현했다. 각 시대의 문화와 정치, 종교 등이 모두 어우러진 표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근현대사를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는 이들의 도전은 게임이 문화이며 예술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순천향대학교 이정엽 교수는 게임이 ‘가치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피동적인 수용’이 아닌 ‘주체적인 개입’과 ‘세상을 사유’하면서 능동적인 주체로 한걸음 다가 갈 수 있는 매체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미디어임을 강조한다.
 

대구공업대 박병호 교수는 최근 문화부가 발표한 독서실태조사를 근거로 청소년 중 전체 10%만 위인전을 읽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기존 텍스트로 된 매체로 이어지는 역사 교육 대신 게임을 비롯한 차세대 미디어들이 갈수록 더 필요한 시대가 왔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라며 “재미와 교육적 기능을 수반하는 시도들이 계속된다면 산업으로서 게임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로서 게임도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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