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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치밀한 스토리 설계로 빚어낸 걸작 ‘13기병방위권’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1.01.04 16:43
  • 수정 2021.01.0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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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의 아이들이 도로를 질주한다. 역시 막다른 골목이 적당했다. 등 뒤에는 거대 로봇들이, 정체 모를 암살자가, 음모를 설계하는 세력들이 쫓아 온다. 숨이 턱 밑까지 닿는 상황.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긴장감이 온 몸을 엄습한다. 13명 아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하며, 생존을 향해 몸부림친다. 벽을 부술 것인가. 뛰어 넘을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눈을 질끈 감고 하늘에 기도해볼 것인가.

첫 째 아이는 꿈 속 세상에서 외계인들을 봤다고 한다. 세 번째 아이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 했다. 일곱 번째 아이들은 ‘착한 외계인’이 우리를 돕는다고 말했다. 열 번째 아이는 ‘그들은 외계인이 아니라’했다. 13명이 서로 누구는 맞다하고 누구는 아니라 하는 상황 속에서 이야기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들어 간다. 
사각형 화면으로 이들을 관찰하는 게이머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13명의 아이와 관찰자인 게이머가 진실을 향해 질주하는 게임 ‘13기병방위권’을 만나보자.

 

13기병방위권은 어떤 게임?
13기병방위권은 시나리오를 이야기하는 ‘회상 편’과 전투 모드를 이야기하는 ‘붕괴 편’과, 이를 종합하는 ‘탐구편’으로 나뉜다. 제목에서 시사하듯 ‘회상편’은 어드벤쳐 게임 방식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을 담는다. 13명이 주인공으로 각자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을 담는다. ‘붕괴 편’은 별다른 설명 없이 무차별적으로 디펜스 게임을 즐기는 시스템.
단, 회상편에서 게임 시나리오를 보다 보면 ‘붕괴편’을 특정 구간까지 진행해야 하며, ‘붕괴편’을 끝까지 진행하려면 역시 ‘회상편’을 특정 단계까지 진행해야 한다. 회상편에서 모든 의문이 회소되면 비로소 ‘붕괴’편에서 하이라이트를 향해 치닫는 구조가 성립돼 있다. 

게임만이 가능한 스토리텔링 기법

주연이 13명 등장하는 기존 매체를 상상해 보자. 대체로 내용은 산으로 간다. 11명이 등장하는 영화 '오션스 일레븐'을 상상해본다면 명확하다. 각 캐릭터 이름을 기억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닐 터다. 그저 몇 분 치고 빠지는 것이 대다수. 오직 주연놀음에 가깝다. 등장인물 수십명이 넘어가는 '왕좌의 게임'은 인물들을 죽임으로서 복잡한 스토리텔링을 간결하게 일원화한다. 영화 '어벤져스'는 각 캐릭터별로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내세우면서 개별 이야기로 대체한다. 각 캐릭터별 줄기를 설명한 뒤 세부 내용은 다른 형태로 설명하는 식이다. 

게임 '13기병방위권'은 13명 주인공을 각 캐릭터로 표현한다. 각 캐릭터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스토리를 체험하는 것이 핵심. 일종의 어드벤쳐 게임처럼 주어진 지역을 탐험하고, 사람과 대화하며 시나리오를 전개하고 단서를 얻는 방식으로 전개 된다. 주인공별로 일종의 단편영화가 복잡하게 연결되는 옴니버스식 구조에 가깝다. 각 캐릭터별 시나리오가 진행될 때 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점차 주어진 문제를 향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진행도'개념을 더해 전체 사건을 통제한다.
 

쉽게 말해 A캐릭터가 라면을 먹으려면 B캐릭터가 라면을 사와야 하고, C캐릭터가 라면을 끓여 줘야 한다. B가 움직이지 않으면 C와 A역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구조를 택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보니 각 캐릭터들은 기가막힌 방식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거대한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구조를 띈다. 

공상과학소설의 집대성

13방위기병의 스토리텔링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게임 전반에 SF요소를 채택하면서 '상식'을 파괴하는 기법을 도처에 배치한다. 우선 ‘시간’과 ‘공간’개념이 모호하다. 13개 캐릭터 모두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분리돼 진행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를 바라봐야 하는 유저들은 머리에서 쥐가 날 지경. 드라마 ‘닥터후’와 같은 시간 여행물을 좋아한다면 이 설정이 쉽게 이해가 갈 듯 하다. 

일례로 주인공은 여러번 겪은 일들이지만 만나는 사람들은 처음 겪는 일이다. 반복된 타임 루프 속에서 새로운 변수를 찾아내는 과정들이 담긴다. 반대로 이를 역용해 어떤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캐릭터가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어제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고, 내일의 적이 다시 미래에서는 아군일 수 있는 상황. 누가 참인지, 거짓인지, 배후는 누구인지가 중요 변수로 다가온다. 그렇게 총 13명과 여러명 조연들이 함께 얽혀들어가 각 시나리오는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스케일로 무장한다.

캐릭터성도 발군이다. 아무것도 모를 듯한 순진한 캐릭터들을 배치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도록 만드는가 하면, 어떤 캐릭터로는 끊임 없이 의심하도록 만든다. 어떤 캐릭터에는 함정을 배치해 상황을 곡해하도록 유도하며, 어떤 캐릭터에는 억울한 상황을 배치해 악당으로 몰아가는 구조들이 녹아든다. 서로 오해하는 캐릭터, 서로 사랑하는 캐릭터, 서로 복수하는 캐릭터 등 온갖 캐릭터들이 등장해 한 판놀음을 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억지스럽지 않다. 각 캐릭터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기법은 모든 요소들을 완벽하개 배치하고 엮음으로서 빈틈을 메웠다. 언제 어느 각도에서 바라봐도 완벽하고 깔끔하게 봉합된 스토리라인을 선보이기에 역사에 길이 남을 완성도를 띈다. 

흠을 잡자면 각 캐릭터가 겪는 상황과 진행들은 대부분 유명 SF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등에서 등장했던 요소들.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설정과 반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칼을 대기 어려운 이유는 모든 요소들을 기가막히게 버무려 냈기 때문이다.

절정으로 치닫는 전투

게임에서 '회상'과 '붕괴'는 스토리라인을 일부 공유한다. '붕괴'에서 등장하는 대사들과 상황들이 '회상'에 반영돼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다. 게임을 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각기 다른 구조를 보이는 것 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문제점. 엔딩을 보고 난 뒤에야 그 모든 문제가 설명되는 점이 단점이다. 모든 의문을 뒤로 하고 일단 진행하다보면 친절히 게임을 설명하기에 스토리라인을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붕괴편은 13명 아이들이 로봇에 탑승한 상태로 시작된다. 몰려드는 적들을 상대로 ‘터미널(기지)’를 방어하는 디펜스 게임에 가깝다. 각 주인공들은 전투를 통해 ‘메타 칩’을 모으며 이를 활용해 무기와 기체를 강화하는 형태로 게임이 진행된다. 화면을 가득 채울 만큼 미친 듯이 물량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가능한한 도시에 상처를 내지 않고, 기체들도 타격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방어에 성공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게임 난이도는 쉬운 편으로 각 유닛의 무기와 효율을 파악하고 업그레이드를 반복하는 것 만으로도 클리어는 문제가 없다. 

 

기병들의 콘셉트와 무기

1세대 기병들은 E.M.P와 데볼리시 블레이드를 활용. 근접전투를 하면서 대형 병기를 무찌르는데 적합하다. 2세대 기병은 센트리 건(포탑)을 위주로 편성하면서 서서히 적을 향해 전진, 플라즈마 아크 절단기로 대형병기를 요리하기에 적합하다. 3세대 기병은 원거리 저격에 특화된 병기들이며, 4세대 기병은 인터셉터를 소환하며 틈틈이 실드를 가동해 아군을 보호하기에 적합하다. 주로 1세대 유닛으로 EMP를 맞춰 적들을 유인하고, 공중 유닛들을 추락시키며, 2세대 유닛들로 포탑을 깔아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며, 4세대 병기로 인터셉터를 출격, 원거리적을 타격하는 방식으로 플레이하기를 추천한다. 

엔딩 그리고 카타르시스

‘13기병방위권’은 전체 플레이타임 30시간안에 농밀한 재미를 담은 게임이다. 어리둥절한 초반부를 따라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게임에 푹빠져들만한 반전을 맞이하게 되고, 그렇게 여러 번 카운터 펀치를 맞다 보면 순식간에 엔딩까지 접근하게 되는 게임이다. 숨쉴틈 없이 전개되는 어드벤쳐 게임을 진행하다가 지칠 때쯤 붕괴 모드로 머리를 식히고, 다시 주어진 의문을 향해 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엔딩이 눈앞에 다가 온다. 

 

엔딩 이후에는 멍하니 화면을 쳐다 보면서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도중에 나오는 후일담 역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다. 모든 크레딧이 올라간 뒤 나오는 The END 문구가 끝나고 나면 진한 여운이 남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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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점>
그래픽 (9 점)   : ★★★★★★★★★☆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작화와 색채. 전투 시스템 그래픽이 단점
스토리 (11점)  : ★★★★★★★★★★★ 10점 만점에 11점줄만한 스토리라인과 진행
캐릭터 (9 점)   : ★★★★★★★★★☆  입체적 캐릭터 구도를 완벽하게 표현.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는 감점요소 
전   투 (5 점)   : ★★★★★☆☆☆☆☆  평범한 디펜스 게임 
보스전 (7 점)   : ★★★★★★★☆☆☆  물밀듯 밀려드는 적군을 상대하면서 느끼는 긴장감과 카타르시스 
사운드 (9 점)   : ★★★★★★★★★☆  말줄임표를 뒤로 하고 기가막힌 연주곡들이 흘러 나온다
조작감 (8 점)   : ★★★★★★★★☆☆  단순 명확한 인터페이스 
몰입도 (8 점)   : ★★★★★★★★☆☆  반복구조에서 오는 권태가 감점 요소 
콘텐츠 (6 점)   : ★★★★★★☆☆☆☆  빈약한 볼륨, 외전격 크로스오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완성도 (8 점)   : ★★★★★★★☆☆☆  회상편과 붕괴편의 시너지가 적은 점, 멀티 엔딩 부재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총점: 80점

구매추천도 : ★★★★☆
‘우주전쟁’, ‘E.T’, ‘매트릭스’, ‘13층’, ‘6번째 날’, ‘에스카폴로네’, ‘혹성탈출(1968)’, ‘다크시티’, ‘배틀스타갤럭티카’, ‘터미네이터’, ‘마크로스’, ‘기동전사 건담’, ‘메멘토’ 등을 좋아한다면 필수 구매. SF마니아라면 비주얼 노벨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유저들이라도 만족할만한 게임.
단, 메카닉을 조작하는 기분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비추.

한줄평

“공상과학소설 키드들의 오랜 꿈. 게임에 담았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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