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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과 작별해야할 때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1.02.08 16:37
  • 수정 2021.02.0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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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은 우리 사천왕 중 가장 약한 녀석이야. 흔한 클리셰지만 효과적이다. 이 뒤로도 적이 많으니 더 강할 수 있도록 수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부터 하일라이트란 이야기도 된다. 수십년을 이어온 이 클리셰가 위기에 놓일 처지다. 어쩌면 더 이상 게임에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출시전부터 워너브라더스가 출원한 게임 특허에 위배되지 않는지 면밀이 검토해야한다. 

오는 2월 23일부터 워너브라더스가 출원한 특허 '네메시스'가 공식 발표된다. '네메시스 시스템'은 이들이 과거 발매했던 게임 '미들어스'시리즈에 쓰였던 '조직 관리'시스템을 칭한다. '미들어스'는 주인공과 '오크 군단'의 싸움을 담는다. 여기서 '오크 군단'을 관리할때 쓰던 시스템 이름이 '네메시스'다. 

'네메시스'아래에서 오크 군단은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 그 정점에는 오크들을 관리하는 총사령관이 있고, 그 밑에는 일종의 사대천왕급 보스인 전쟁군주들이 존재한다. 다시 그 밑에는 워치프. 상급 대장과 하위 대장, 잡졸로 나뉜다. 오크 세력 내부는 세력다툼이 심한데 상위 클래스와 대결을 펼쳐 승리하면 승진하는 식이다. 잡졸이 워치프를 잡으면 그 즉시 워치프가 되는 식이다. 여기에 랜덤방식으로 성격을 부여하고 직업과 스킬 등을 부여하면서 쉴새 없이 오크들이 스폰되며, 오크들끼리 서로 싸우면서 생태계가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넓은 의미에서 이 시스템은 피라미드형 조직구조로 계급을 정하고, 계급간 이동이 발생하는 시스템을 틀로 정의해 특허를 받은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게임계는 발칵 뒤집힌다. 오랜 기간 동안 서브컬쳐에서 통용되던 일종의 공식들이 박살나는 셈이다. 실제로 이 같은 구도는 과거부터 있어온 구도다. 당장 오크들간의 세력다툼의 경우 '워해머'시리즈나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만 봐도 빈번하다. 일례로 '워크래프트'의 경우 오크들끼리 '막고라'를 열고, 승리한 자가 상위 직종으로 올라가는 설정을 근간으로 한다. 특허 자체의 정당성에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특허권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과거 미씩엔터테인먼트는 렐름 vs 렐름간 전투를 특허로 출원한 바 있다. 이들은 3개 세력(종족)이 맞물려 싸우는 전투를 자사 특허로 규정했다. 이후 등장하는 게임들이 세력 vs 세력간 1:1 전투를 추구하게 된 것도 이 게임이 특허를 출원한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1:1 전투는 인구 불균형이 올 경우 PvP가 비활성화될 확률이 높은 구도. 3세력 체제일 경우 한 개 세력을 나머지 두 세력이 견제할 수 있으며, 소위 별동대 전략으로 이른바 '샌드위치'전투가 가능하기에 밸런스를 잡을 수 있는 구도다. 이 같은 장점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게임 업계 시각으로 보면 각 시스템을 채용하는 것은 당연한 관례처럼 보이지만, 특허를 관리하는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 특허로 사천왕도,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적들도 만나보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어쩌면 바로 지금 새로운 특허 괴물들이 탄생하는 순간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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