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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스튜디오 단편 웹소설] 팀장님의 은밀한 취미

아크 스튜디오 대표 작가: 이도경

  • 게임이슈팀 기자 press@khplus.kr
  • 입력 2021.08.0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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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제정신이야? 아니면 나 일부러 먹이는 거야?”
결국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직속 상사의 갈굼을 당하는 건 역시 기분 더럽다.
“너 내가 3일 연차 낸 거 알고 있지?”
“네….”
“그런데 이제 입사 2년 차가 팀장이 낸 연차일에 자기 연차도 내시겠다?”
“…….”
“그래서, 사유는?”
“어, 저기… 그, 자기계발…이란 거로….”
와. 사람이 눈으로도 욕할 수도 있는 거였구나.
우리 마케팅 1팀을 먹여 살리는 박혜율 팀장님의 눈을 보고 나는 뱀 앞의 쥐처럼 오그라든다.
‘하아…. 지스타는 포기해야겠구나.’
그렇게 체념하려던 찰나.
“후…. 그래 뭐, 당장 급한 일도 없고 하니.”
어?
“다녀와라. 다음에 또 이러면 일요일 근무로 때워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고.”
웬일이야, 박 팀장님이? 
아무튼, 잘 됐다! 드디어! 2년 만에 지스타에 간다!
“뭐해, 가 봐.”
“아, 네!”
“아씨, 쇠독인가….”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박 팀장이 목 부근을 긁는 게 보였다.
‘왜 별모양으로 빨갛지? 이상하네?’

2년 만에 찾은 게임 페스티발-지스타에서 보고 싶은 부스, 이벤트들을 열심히 즐기느라 이틀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노리고 있는 행사는 바로 3일차!
[지금부터, 라스트 프론트라인 크로스 코스프레 경연대회가 열립니다!]
한국 최고의 미소녀 캐릭터 수집형 게임 라스트 프론트라인!
일명 ‘라프크로’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코스춤 플레이 경연대회였다. 참고로 19금 성인용 게임이었다. 
암튼 코스어 중 1등을 맞추면 100만원 상당의 게임 재화를 얻을 수 있는 특전이 있어 나를 포함한 매니아들이 혈안이 되어 관람하고 있기도 했다.
‘다들 엄청나네. 와! 저런 노출도로 코스를… 저거 괜찮나? 근데 쩐다, 외모도 탑급이고.’
다른 코스어들도 굉장했지만, 
[자 다음은, 전술 가이노이드 엘레나 코스를 하신 ‘코스한울’님입니다!]
“와….”
코스한울 님이란 분이 올라온 순간 감탄밖에 안나왔다.
캐릭터 재현도도 완벽하지만, 엘레나의 캐릭터성을 살리는 표정이며 몸짓 연기가 대단하다.
‘저 사람이다!’
나는 단번에 코스한울 님을 1등으로 뽑았고,
[네, 영광의 1등은! 코스한울님이십니다!]
당연하게도 그분이 1등을 차지했다. 
나도! 100만 상당의 게임 재화에 당첨!
‘저기 계시네.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저렇게 예쁜 코스어에게 후줄근한 덕후인 내가 먼저 가서 인사를 드리기는 좀…. 
기분 탓인가? 방금 코스한울님이 날 본 것 같은데… 어, 왜 이쪽으로 오시지?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놀랍게도 코스한울 님이 내게 먼저 다가왔다!
“무대에서도 봤어요. 너무 열정적으로 제 이름을 부르며 응원해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저, 정말…요?”
그러며 손까지 잡아준다. 그 그만둬! 나 같은 모쏠에겐 자극이 너무 세….
“사진, 같이 찍어드릴까요?”“저, 저야 영광이죠!”
코스한울 님은 내게 팔짱을 끼고 바짝 붙었다. 너무 자극이 쎄다니까요! 
아, 좋은 냄새. 따뜻하고 부드러워, 저 낭랑한 귀여운 목소리까지 엘레나랑 똑같아.
같은 여자라도 바가지 긁는 목소리로 날 갈궈대는 박 팀장 하곤 전혀 달라!
그러던 코스한울 님이 문득 목에 걸린 초커 부위를 긁적였다.
“아, 죄송해요…초커의 쇠장식이 피부에 안 좋은 것 같아요.”
초커에는 별모양의 금속 장식이 있었다. 쇠독이라도 오른 거겠지.
“아, 아니에요! 자, 그럼 찍습니다!”
찰칵!
“고맙습니다! 저 SNS도 하고 있으니까, 계속 응원해주세요!”
코스한울 님과의 투샷, 내 영원한 보물이 될 거다. 거기다 약간 수위가 있는 비공개 SNS까지 알려주시다니! 
아, 역시 박 팀장에게 갈굼당해가며 3일 연차를 내서 온 보람이 있어!
“응?”
박 팀장 생각이 나서인가, 코스한울 님 사진을 보니 묘하게 박 팀장하고 닮은 것 같….
“…아니 잠깐.”
옅게 보이는 눈물점에, 올라간 눈꼬리, 약간 비뚤어진 송곳니에….
“에이, 설마….”
하는 순간, 연차 신청하러 갔을 때 박 팀장이 목을 긁적였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박팀장, 나랑 같은 날 연차 겹친다고 짜증 내지 않았나?
“…어?”

“그래서, 잘 놀다 왔냐? 왔으면 밀린 업무나-.”
오자마자 박 팀장은 짜증 어린 목소리로 빈정댔다. 사람 짜증 나게 만든다.
“박 팀장님. 오늘 혹시 단둘이 면담 되십니까?”
“……? 그래.”
그것도 이제 오늘부로 끝이다.
나는 박 팀장과 단둘이 회사 상담실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문을 걸어 잠갔다.
철컥! 

“뭐야? 왜 문을 잠그고 그래?”
불안한 건지 짜증 내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짓는 박 팀장을 향해 나는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거기엔 코스한울과 찍은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이거, 박 팀장님이시죠?”
“뭐야 이게, 만화 주인공? 코스프레란 거? 이게, 나라고?”
“네, 분명 박 팀장님이십니다.”
그래, 코스한울 그녀는 분명. 내 앞에 있는 박혜율 팀장이다. 
“네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구나?”
“박 팀장님과 같은 위치에 눈물점, 얼굴선도 눈매도 똑같죠.”
“아주 소설을 쓰는구나? 머리 아파?”
“팀장님도 지스타 날 3일 연차를 썼죠. 게다가 박 팀장님 목에 남아있는 그 자국!”
“……!”
“그 자국, 코스한울 님도 똑같이 나 있었죠.”
박 팀장은 목에 있는 별 모양의 붉은 자국을 흠칫 손으로 가렸다.
기세를 잡았다!
“거기다 팀장님이 연차를 쓰시는 날이 코스한울이 이벤트에 나가던 때랑 겹치더군요. 우연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계속!”
“…….”
박 팀장은 이제 입을 다물었다. 승기를 잡은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비밀 계정을 보니 어디 보여주기 힘든 의상까지 입으셨던데요? 그런 야한 미소녀 캐릭터 코스프레를 하고 다닌단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곤란하겠죠?”
난 이제 너의 약점을 잡았다고, 이 망할 팀장아!
“…그래서?”
“이 일이 알려지기 싫으면, 앞으로 제가 하는 말을-.”
이제 그동안 너에게 당했던 걸 모두 갚아주마!
“싫은데?”
“…예?”
박 팀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데, 내가 취미생활을 들킨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그게 내 커리어에 금이라도 가게 할 것 같아? 사회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어, 어?”
“뭐 좀 시끄러워지겠지! 나도 쪽 좀 팔릴 테고. 근데, 그런 내 약점을 잡아서 날 어떻게 해보려던 네 행동이 알려지면 넌 어떻게 되겠어?”
박 팀장은 음성녹음이 되는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우선, 네가 라프크로 같이 여캐들이 찌찌 빵뎅이 까는 19금 게임을 하는 게 회사에 알려지면 회사 여직원들이 널 어떻게 생각할까?”
“윽!”
“네가 라프크로 굿즈 머그컵 쓰는 걸 볼 때부터 진작 알고 있었어!”그, 그게 이미 들켰었다고?!
“뭐 그건 나도 재밌게 하고 있고, 개인 취미니까 뭐라 터치를 안 했는데, 그런데!”
탕!
“넌 선을 넘었어! 네가 지금 한 짓은 협박죄에 성희롱, 사생활 침해까지! 회사에서 쫓겨나고 호적에 빨간 줄 거지고 빵 가고 할 일이야! 새끼야!”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가 총성같이 내 가슴을 꿰뚫는다.
“내가 널 오냐오냐 키워줬더니 취미로 협박해? 야 이 새끼야, 좋아 말 나온 김에 함 끝까지 가 보자. 너 내가 너 잘릴 뻔한 거 무마해준 거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네…네?”
“지난번 GX24 광고 외주 체크 못 해서 난리 났던 거, 세일 게임즈 광고에 캐릭터 이름 잘못 넣어서 난리 난 거, 보고서에 예산 누락된 거도 전부 내가 커버쳐 준 거야!”
팀장님 입에서 쏟아지는 내 실수들은 ‘내가 왜 아직 회사에 있지?’ 생각하게 했다.
“메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야? 어?! 더 할 말 있어?”
그리고, 왜 박 팀장님이 날 살려두고 있는지도.
“아니요….”
“아직도 내 취미 가지고 협박할 생각 있어?”
“아닙…니다….”
머리가 하얗게 된다. 씨, 왜 눈물이 나오고 그래….
“사내새끼가 울기는….”
박 팀장은 내 머리를 장난스럽게 쓸었다.
“그래, 네가 나한테 원한이 깊긴 하겠지. 내가 커버 쳐줘도 신입인 네가 알 리도 없고, 너한테 잔소리에 갈구기나 하는 더러운 상사로밖에 안 보일 테니까.”
“티, 팀장… 훌쩍! 님….”
“그만 짜.”
박 팀장은 엄지로 내 눈물을 쓱 훔쳐 줬다.
“그래서, 지스타는 재미있었어?”
“네…?”
내가 고개를 들자 박 팀장은 그때, 코스한울이 지었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무대에서 널 봤을 땐 진짜 놀랐고, ‘얘가 날 알아차렸나?’ 했는데, 그게 아니란 거 알고 나서는… 기뻤다. 좋았어.”
“예…?”
“그래서 너한테 먼저 다가간 거야. 솔직히, 좀 두근거리더라.”
“팀장님…?”
“미안하다. 네가 이런 나쁜 마음 먹을 정도로 상처받고 있을 줄은 몰랐어. 잘 챙겨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했구나. 미안해.”
“…으, 바, 박 팀장님….”
아 몰라, 이젠 눈물이 터져 나온다.
“으이구! 또 울기는.”
박팀장이 꼭 안아주었다. 무척 따뜻했다.
“근데, 너 내 취미 가지고 협박한 대가는 치러야지?”
“예….”
“나를 협박해서 뭐 하려 했어?”
박 팀장은 실실 웃으며 내 목을 휘어 감았다.
“짜식, 네가 하려던 것만큼 부끄러운 짓을 좀 해도 되겠지?”
“네…?”
“다음 행사에서 커플 코스프레하려고 했거든? 근데 원래 약속했던 코스팀의 애가 못 나간다고 해서 말이야.”
안 좋은 예감이 든다.
“네가 대타 뛰어줘야겠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괜찮아. 연차는 내 줄 테니까. 의상도 다 준비돼있고!”
나는 아무래도 박 팀장님께 단단히 목줄이 매여버린 것 같다. 

‘잠깐 그런데. 정말로 나와 지스타에서 만난 게 우연이었나?’
연차가 똑같이 겹친다는 것도, 내가 덕후인 걸 아니까 지스타에 가려 했던 것도 알 터였다.
게다가 먼저 내게 다가와서, 가까이 붙어서 사진도 찍고, 굳이 내 곁에서 초커를 건드린 건….

 

[경향게임스=게임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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