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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생산적 피해망상이 필요하다

  • 정리=김상현 편집국장 aaa@khplus.kr
  • 입력 2021.08.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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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805호 기사]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필자가 기업을 평가하면서 항상 고민되는 지점 중 하나가 모험에 투자를 하느냐 혹은 안정성에 투자를 하느냐다. 물론 벤처기업의 특성상 모험이 없는 투자는 없다. 그러나 투자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면서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느냐는 항상 고민되는 문제다. 이 주제는 필자가 많이 받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많이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많은 대표들이 모험이 없는 기업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식의 표현도 사용한다. 이번에는 캐주얼 장르에 배팅해보기로 했다는 식의 이야기도 듣고, 하이엔드 끝판왕을 만드는데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큰 기업은 도전에 성공한 기업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위험할 때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용기라는 주장도 한다.
사실 용기와 무모함은 결과적인 평가일 뿐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종이 한 장 같은 미세한 차이가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저서로 유명한 짐 콜린스는 그의 다른 저서인 ‘위대한 기업의 선택’에서 위대한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모험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예측 가능한 모든 나쁜 상황을 상정하여 피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피하면서 최소한의 위험만을 조심스럽게 준비했다고 설명하며, 이를 ‘생산적 피해망상’이라고 표현했다.

게임을 제작하는 산업의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필자의 경험상 게임 제작사의 대표들이 훨씬 모험적 성향이 강하다. 기업 경영 과정에서 의사 결정을 마치 게임을 플레이하듯이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게임에는 세이브와 로드가 있고, 도전에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게임의 이런 특성은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고, 더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긴장감을 떨어트리고, 사전 준비를 소흘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도전을 통해 실패하면서 학습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시리즈에는 배틀넷에서 하드코어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기능이 있다. 하드코어 캐릭터로 플레이하면 고급 장비와 아이템이 훨씬 높을 확률로 드롭되고, 캐릭터를 더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하드코어 캐릭터의 패널티는 한 번 캐릭터가 사망하면 더이상 그 캐릭터로 플레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많은 하드코어 캐릭터 유저는 실수로 캐릭터가 사망하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플레이하고, 일반 캐릭터 10레벨 플레이 구간을 30레벨에서 플레이하는 수준의 신중함을 보여준다. 기업의 경영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니다. 굳이 게임에 비교하자면 하드코어 캐릭터 플레이처럼 운영해야 한다. 게임은 세이브와 로드가 있어도 기업은 망하면 다음이 없다.

이중반룡 그는?
게임 유저로 시작해서 2001년 게임 기획자로 게임업계에 입문했다. 야침차게 창업한 게임 회사로 실패도 경험했다. 게임 마케터와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치며 10년 간의 실무 경력을 쌓았다. 이를 기반으로 게임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분야 투자 전문가로서 수 년째 일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살려 대학에서 게임 기획도 강의하고 있는 그는 게임문화 평론가를 자처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박형택)

※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향게임스=김상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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