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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인생 담긴 퍼즐게임 ‘인생팡’

  • 변동휘 기자 ngr@khplus.kr
  • 입력 2021.10.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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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디자이너가 있었다. 일찍이 그는 여러 차례 일자리를 잃은 슬픔을 경험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한 애환과 ‘내 삶은 왜 이럴까’라는 한탄을 게임으로 만들었다. ‘내꿈은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015년 출시된 이 게임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들을 중심으로 화제가 됐고, 입소문을 타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그의 차기작 ‘서민몬스터’ 역시 2030 세대의 지치고 아픈 마음에 공감의 손길을 내밀며 눈길을 끌었다.
이후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최근 차기작을 내놓았다. ‘인생팡: 내꿈은 사치(이하 인생팡)’이라는 이름의 캐주얼게임이다. 퍼즐게임에 인생을 담고 싶었다던 퀵터틀 이진포 대표의 말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아가고, 마침내는 어떠한 마무리에 도달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게임 속에 담겨 있었다. 과연 그가 말하고픈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보며 살펴봤다.
 

‘인생팡’은 기본적으로 3매치 퍼즐게임을 베이스로 한다. 같은 색상의 블록 3개를 나란히 나열하면 터지고, 개수에 따라 보너스를 얻는 식이다. 게임 내에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블록과 시간 블록이 존재하는데, 각 블록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가슴 한 구석이 쓰라려오기 시작한다.

뜻대로 안되는 삶
일단 게임을 시작하면, 어떤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는지를 결정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부터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마음 같아서야 부자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대부분 가난한 부모님이다. 그나마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평범한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날 확률도 극도로 낮다. 
부모님이 랜덤하게 선택된 이후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블록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시계 등 총 4종류가 있는데, 각각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우연히 하게된 일, 시간을 의미한다. 3가지 색상의 블록을 터뜨려 일정 수량 이상을 채우게 되면, 각각의 이벤트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자신이 요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빨간색), 운동을 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거나(파란색),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노란색) 식이다.
 

시계 블록은 말 그대로 시간을 의미한다. 시계 블록을 터뜨리게 되면 시간 게이지가 차오르며, 이를 가득 채우게 되면 성장을 하게 된다. 신생아에서 유아, 학생, 청년, 사회인 등의 단계를 거치게 되며, 이를 모두 지나면 어떤 인생을 살게 됐는지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 과정들 역시 순탄하게 진행되는 편은 아니다. 다음 블록이 어떻게 배치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왜 ‘인생팡’이라는 제목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부분인데, 정말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네 인생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방황과 시련의 연속
이 게임의 진행과정을 인생으로 대입해보면, 정말 말 그대로 ‘방황과 시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혹은 뭘 잘할 수 있는지 전혀 발견하지 못한 채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가기도 하고, 뭔가를 발견했다고 한들 거기서 그치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에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시련도 찾아온다. 학생 단계를 지나 청년이 되면, 학자금 대출 이벤트가 발생하게 된다. 중산층 부모님 정도만 되어도 어느 정도 지원해줄 수 있다며 넘어가게 되나, 대부분 가난한 부모님으로 플레이하게 되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이 강제된다. 설령 학자금 대출 이벤트가 건너뛰어지더라도, 이후 생활비 목적의 대출을 받아야 한다.
 

대출 이벤트가 발생하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우연히 일어난 것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한다. 포기할 것을 결정하면 해당 색상의 블록이 대출금 블록으로 변환되며, 이를 터뜨리면 대출이자를 상환하는 식이다. 대출이자 게이지는 매 턴마다 3개씩 늘어나며,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면 다시 원래 블록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상환하지 못하고 게이지를 모두 채울 경우 해당 블록들이 전부 벽돌이 돼 장애물로 작용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뭔가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도 씁쓸한데, 해결하지 못했을 때의 착잡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같은 종류의 블록 5개를 합치면 ‘운명카드’가 나오는데, 이 부분 역시 인생의 쓴맛을 환기시킨다. 부루마불 게임의 ‘황금열쇠’와 같은 개념인데, 언제나 좋은 것만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때로는 특정 블록 효과를 증폭시켜 빠르게 인생 테크트리를 밟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하나, 또 어떤 때는 시간을 빨리가게 하기도 하고, 특정 블록 게이지를 감소시키기도 한다. 말 그대로, ‘인생사 새옹지마’를 완성시키는 요소다.

인생의 회전목마
이렇게 모든 과정을 마무리하고 나면,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를 타로카드 형태로 보여준다. 게임 내에는 55개의 엔딩이 준비돼 있으며, 자신이 달성한 결과는 업적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꽤 괜찮은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리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삶이다. 직업 없이 동물들만 끼고 살아 동네의 문제아로 전락한 백수 캣맘이 된다던가, 자발적 취업 포기자가 되는 식이다. 가진 게 건강한 몸 밖에 없어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살아간다던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정도는 굉장히 양호한 수준이다. 
 

여기까지가 한 세션으로, 대체로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아 다시 플레이하고, 또다시 엔딩을 맞이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로 유명한 일본 음악감독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를 반복해서 듣는 느낌이다.

씁쓸한 뒷맛
사실 게임 자체는 매우 단순하고 짧다. 실제로 단일 세션을 마무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5분 정도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개발진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으로, 전작인 ‘내꿈은 정규직’, ‘서민몬스터’ 등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하지만 게임을 거듭 플레이하며 느끼는 감정만큼은 가볍지가 않다. 이 일련의 과정들을 어느 정도 거치고 나면,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특히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2030 세대라면 더 공감대가 클 것이기에, 불편한 감정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 게임을 개발한 퀵터틀 이진포 대표는 기자에게 “퍼즐게임 안에 인생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게임 전문지 기자로 입문한 이후 지속적으로 바라봤던 이 대표는 꽤나 사색적이고, 현재의 고민과 생각을 말보다는 자신의 언어인 게임으로 표현해왔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은, 다양한 인생의 길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있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게임 자체가 워낙 짧고 단순하기에 플레이 자체의 재미를 느끼긴 다소 어렵지만, 그가 느끼고 고민했던 ‘인생의 회전목마’를 같이 바라보는 느낌으로 플레이해보길 권한다.

[경향게임스=변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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