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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심의인가

  • 윤영진 기자 angpang@kyunghyang.com
  • 입력 2005.04.2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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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1일. 닌텐도가 개발하고 대원씨아이가 국내 정식 유통할 ‘파이어엠블렘: 창염의궤적’이 18세 이용가를 맞았다. “무기의 체계가 너무 사실적”이라는 것이 주요 이유다. 이번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판단에 제동을 걸 생각은 없다. 아니 오히려 이번 영등위의 결정은 분명 옳았다. 현재의 등급판정 제도 체계라면 영등위의 판단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의 게임등급 심의는 심의를 신청한 회사가 자체 신청한 등급 중 하나가 선택된다. 대원씨아이의 전체 이용가와 18세 이용가의 선택문 중 영등위의 판단은 전체 이용가는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분명히 12세나 15세 이용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청사의 항목에는 이러한 중간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웃찾사’가 따로 없다. 상상을 해보자. 죄를 지은 누군가가 있다. 그에게 실형을 내리는 것은 재판관이다. 그가 어느 정도의 죄를 지었으며, 사회에 끼친 영향은 어떠한지. 그의 죄질은 또한 얼마나 악질이었는가에 따라 형량을 달리한다. 그런데 죄를 지은 이가 스스로 자신의 형량을 제시한다면 얼마나 코믹할까. 아니 좀도둑이 무죄와 사형 둘만을 선택한다면 어떠할까. 분명 무죄는 아닌데. 그렇다면 사형을 내려야만 할까.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수년째 등급심위 법률에 의해 자행돼 왔다.

잘못된 법령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 사회엔 지레 짐작이 만연하고 있다. 무엇 하나를 평가하는 데도 “무엇이지?”라는 의문보다 “무엇일 거야”라는 유추에 길들여져 있다. 일단 이렇게 판단되면 그 인상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등급 신청사의 판단이라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 “전체 이용가를 맞겠지. 그럴 거야”식의 사고방식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한 제대로 된 등급 판정을 받기까지에는 꽤나 오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근절되기 어렵다.

당장이라도 법 정비에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 게임회사의 신청 등급 신청이 아닌 영등위 자체 내의 적합한 판단만으로 등급 심의가 이뤄지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일까. 지금 당장이라도 등급심의에 관한 근원적인 문제해결이 우선시 돼야 한다. “너희가 받을 등급을 너희가 신청해”가 아니라 “왜 신청해야하는가”라는 문제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지금처럼 근본을 놓치고 즉흥적인 해결책만 찾는다면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이 지리한 논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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