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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는 결코 ‘봉’이 아니다

  • 윤영진 기자 angpang@kyunghyang.com
  • 입력 2005.05.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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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 국내 온라인게임의 히트 제조사이자, 누구나 인정하는 대표적인 온라인게임회사의 대표 게임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가장 보안에 철저해야할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그대로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며칠 뒤, 문제를 제보 받은 해당 개발사는 곧바로 패치를 단행하고 공식 사이트에 사과문을 공지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분명 아이디와 패스워드의 유출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지난 1990년대 온라인게임 태동기에 발생한 사건도, 클로즈베타 테스트 중 불거진 문제도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상용화된지 한참이 지난 국내 대표 온라인게임에서 벌어진 불과 며칠 전의 참극이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상 필자는 개발사의 아이디와 패스워드의 보안을 질타할 생각은 없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부분에 대해 등한시한 개발사의 작태에 비하면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까닭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당시 사태를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개발사의 한심한 모습은 국내 온라인게임의 수준을 ‘확실히’ 깨닫게 해줬다. 당시 개발사는 유저들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새로운 패스워드 발급을 종용했다. 물론 패스워드를 변경하지 않는 한 게임 자체의 접속 또한 가능할리 없다. 이 과정에서 유저들은 주민등록번호와 본명, 기존의 패스워드와 새로 바꿀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것만으로 모든 과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속출했다. 우선 동시다발적인 유저들의 패스워드 변경으로 말미암아 서버가 다운되는 등 해당 사건이 발생한 뒤 수십시간 동안 패스워드 변경 자체가 불가능했다. 자연, 과금을 지불했던 유저들은 당일 날 게임을 즐길 권리를 잃게 된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아쉬움이었다. 둘 째, 주민등록번호를 알지 못하는 유저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분명 회원 가입시와 게임 플레이스 동의 문구 조항이 존재하지만). 물론 해당 개발사에서는 본인에 대한 계정만을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고객지원팀 관계자는 계정을 매매한 유저들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해줄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유저들이 자신의 계정을 가질 수는 없다. 형과 함께 즐기거나 부부가 함께 즐길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아울러 본인이 아닌 유저 모두를 계정 매매범으로 모는 듯한 처사도 용납되기 힘들다.

그들도 분명 과금을 해왔고 또한 계정에 등록된 본인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계정비를 지불해왔다.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1년 이상 게임을 즐겨왔고, 자신이 애정을 담은 캐릭터와 장비들, 사이버머니였음에도 그들은 한순간 이 모든 것을 개발사에 몰수당했다. 이때까지 고객으로 인정해오던 개발사가 순간, 스스로의 실수임에도 이들을 계정을 매매한 불한당으로 인식한다는 것에는 분명 문제점이 있다.

한심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바로 주민등록번호를 모르는 유저들을 위한 장치가 마련됐다는 사실이다. 이번 문제가 해결되는 동시에 예전 패스워드로 게임에 접속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해당 개발사의 입장 표명이었다. 어찌 보면 유저들을 위한 개발사의 배려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 이는 동시접속자를 늘리고 좀 더 많은 스스로의 이익을 취하기 위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물론 개발사는 이후 기간이 만료될 예정이었던 이벤트 기간을 늘리고, 하루 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1일 무료 계정 이용권을 일괄 배표했다. 그럼에도 유저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드높이며 해당 개발사를 질타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백건씩 올라오고 있다. 왜일까. 당장 반성하고 되새기기에 앞서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100% 개발사가 잘못했으되, 손실을 모두 유저에게 돌리는 현재와 같은 거대 개발사의 횡포가 만연하는 한 국내 온라인게임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게임성 높은 블록버스터라 할지라도 이를 즐겨주는 유저가 없다면 이는 게임도 뭣도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단순히 이벤트를 연장해주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하는 개발사의 모습은 더 이상 유저들에게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유저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 반성하는 자세.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닐까. 아울러 이것만이 개발사들이, 해당 게임이 유저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진리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유저는 결코 ‘봉’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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