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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라는 이름의 날개

  • 윤아름 기자 imora@kyunghyang.com
  • 입력 2005.07.2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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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요즘 지면을 통해 '미니팬미팅'이란 코너를 연재 중에 있다. 스타 프로게이머와 소수의 팬까페 회원들을 모아놓고 말 그대로 '만남'을 주선하는 것. 늘 경기장에서 만나면 마주치는 선수들이지만 '팬미팅'을 하기 위해 약속장소에 나타나는 그들을 볼 때면 낯설다.

그들은 매일 보는 유니폼을 입고 있지도 않고 언제나 빼놓지 않고 들고 다니는 키보드 가방도 매고 있지 않다. 여느 스무살 청년들이 그렇듯 헐렁한 힙합바지에 귀여운 캐릭터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튀고 싶을 땐 목걸이도 하고 귀걸이도 한다. 그리곤 키보드 가방 대신 한 손은 주머니에 멋드러지게 걸치고 나머지 한 손은 휴대폰이 들려있기도 하다. 단연, 팬들은 그 모습이 눈에 낯설겠지만 숨을 멈추고 모든 행동을 지켜본다.

음식을 주문해 밥을 먹을 때도, 대화를 할 때도, 팬들 앞에서 놀림(?) 당할 때도 망가지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아! 그럴 때는 있다. 필자가 몰래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면 가끔 우승꽝스러운 사진이 찍히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무방비 상태에서도 멋지다. 아니 자신이 멋있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임요환이 메이크업을 안해도 사진이 잘 나오는 이유는 피부가 좋기 때문이고 홍진호가 못 알아들을 정도로 빠른 말투를 쓰지만 인기가 많은 것은 가끔씩 던져주는 시원시원한 미소 때문이다. 프로게이머 선수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각각의 개성이 돋보인다. 비단 유명 프로게이머들만 놓고 보지 않아도 된다. KOR의 박찬수 - 명수 형제도 너무 똑같이 생긴 쌍둥이지만 나름의 개성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미 프로게이머들은 이름 앞에 '프로'라는 직함을 달면서 개성이란 날개를 달았다. 이 날개가 활짝 펴지면 펴질수록 높은 곳으로 올라갈 힘찬 날개짓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팬미팅을 하면서 두가지를 생각했다. 보통 게이머에서 프로게이머가 되기까지, 그 프로게이머란 신종 직업이 사람들이 들으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까지 지금의 선수들은 얼마나 호된 자기 관리가 필요했을까. 매년 수십만의 청소년들이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여러 게임대회에 출전하고 매일 저녁 삼성동 스튜디오 일대를 기웃거린다.

언젠가 한번 팬미팅을 주선한 자리에서 모 선수가 했던 말이 있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엔) 예전엔 너무 게임이 좋아서 몇날 몇일을 밤을 새도 질리는 줄 몰랐어요. 지금은 게임을 즐길 수가 없어요. 지금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선수들의 마음도 마찬가지 일거예요. 왜냐하면 게임을 하는 명분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죠." 이 말을 들은 팬들도 필자 자신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스무살을 갓 넘긴 어린 청년이지만 생각하는 깊이가 또래와는 사뭇 다른 진지함이 그들에겐 느껴진다. 해보고 싶다는 도전 정신만으로도 대단하다 여겨질 만한데 지고 또 지면서도 굽히지 않고 열정만큼은 잃지 않는 '프로'게이머들. 지난 주에 프로리그 1라운드 정규시즌이 마감됐다. 10주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금방 지나갔지만 선수 개개인에겐 기쁨도 있을 것이고 슬픔도 있을 것이고 아픔도 있을 것이다.

이번 리그를 통해 갓 데뷔한 신인도 몇몇 눈에 들어온다. 필자는 그들 중 한 명이 자신보다 훨씬 오래된 선배를 물리치고 난 다음 표정을 본 적 있다. 카메라를 의식해 웃음을 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뭇거리다 결국 자신의 감독님과 선배들이 있는 팀 벤치를 향해 쑥스러운 웃음을 날리더라. 필자가 그 웃음을 보고 가슴이 '뭉클' 했던 건 서투른 날개짓을 통해 첫 비상을 한 또 한명의 '프로' 게이머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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