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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규의 차이나 망락유희(網絡遊戱)] 9조 시장에 달한 중국 대표 게임문화 ‘왕빠’

  • 장인규 중국 특파원 dage@kyunghyang.com
  • 입력 2006.11.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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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 이에 걸맞게 네티즌 수만도 1억명을 돌파하며, 세계 2위의 인터넷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들 중 25%에 해당하는 약 2천 5백만명이 왕빠(중국 PC방 명칭)를 이용하고 있다. 시간당 2~3원을 지불하는 왕빠 산업은 올해에만 700억원(한화 8조 7천억원)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온라인 게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왕빠. 구멍가게 형태로 시작해, 상장기업으로 발돋움한 중국의 왕빠는 지금 이 시각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중국 최초의 왕빠
1996년 11월 2일. 당시 33세의 쩡창이 북경수도체육관 서문에 ‘스화카이’라는 이름의 인터넷커피숍을 오픈했다. 중국 최초의 왕빠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94년 당시,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쩡창. 그는 런던에 세계 최초의 왕빠가 생겨난 후, 다음해인 1995년 캐나다에서도 왕빠가 크게 유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북경으로 돌아온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인민폐 20만원(한화 2천만원)을 투자해 중국 최초의 왕빠를 차리는 일이었다. 물론 쩡창 스스로도 현재와 같은 왕빠의 폭발적인 인기를 예견하지는 못했다.

쩡창은 “이렇게 폭발적인 현상을 보이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PC 1대당 3만원(한화 삼백만원)정도가 들었다. 개업 당시 20대를 마련했으나, 1분 접속에 5원이라는 고가격이 걱정이었다. 1분간 홈페이지 한 페이지를 여는 정도가 고작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높은 가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예상 외로 엄청난 인기가 이어졌다. 클린턴과 빌 게이츠 등 유명 인사들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회고했다. 인터넷 1세대 보급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왕빠. 고객들의 방문 목적은 주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이후 중국 인터넷의 2세대가 도래하면서, 채팅이나 e메일, 인터넷 영화 감상을 목적으로 한 네티즌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이때를 기점으로, 쩡칭은 100개의 연쇄점형식 왕빠를 계획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2002년 중순 69호점을 개업했을 때, 중국 왕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란지수(藍極速)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6월 16일 새벽 북경의 란지수 왕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총 25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중경상을 당한 방화사건이었다. 방화범을 포함해 사상자 상당수가 미성년자로 밝혀지면서, 중국 정부의 관리감독이 강화됐다. 3,300개 왕빠가 일제히 영업 중지를 당했다.

당시 왕빠의 90%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체 불법영업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후 쩡창은 모든 왕빠를 정리하고, 사이버 비즈니스로 돌아섰다. 중국 문화부 통계에 의하면 전국에 산재한 왕빠수만 총 11~12만개에 달하며, 2005년 경영수입 역시 인민폐 268억원(한화 약 3조3천5백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화산업임을 인정한다는 내용도 공표했다.

요람에서 현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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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ㅣ 주요 사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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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998 ㅣ 컴퓨터방에서 고급화된 왕빠로 진화됐다. 이후 점차 PC게임 위주로 발전하면서 시간당 10원-15원의 가격대가 형성됐다. 현재는 시간당 2~3(한화 250원~370원)원의 이용요금이 책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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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2000 ㅣ 왕빠가 신속하게 발전된 시기로, 국가의 관리 부재를 틈 타 도처에 난립했다. 자연 경쟁이 심화됐으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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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ㅣ 국무원 통지령으로 전국적으로 난립하던 왕빠가 첫 번째 위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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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ㅣ 란지수 사건 발생으로 모든 왕빠가 영업중지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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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ㅣ 중국 문화부가 ‘인터넷서비스경영장소연쇄점경영관리강화문화부통지’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왕빠는 연쇄점형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됐다. 이후 왕빠 시장에 자금이 유입되며, 비약적인 발전을 토대로 현재와 같은 형식의 왕빠 문화가 자리 잡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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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빠
인터넷 카페를 의미한다. 국내 PC방(게임방)과 같은 개념이다. 파( 중국식 발음 빠)란 영문 Bar의 음역으로 고급스러운 서양식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술을 먹을 수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을 가리켜 지우빠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기의 중심
지난 2004년부터 복건성 롄장 출신 사람들의 주도 하에 왕빠에 대한 투기가 시작됐다. 2005년 여름 왕빠에 대한 투기는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롄장 출신들이 사들인 왕빠만 북경 번화가 부근에 100여 곳에 다다랐다. 당시 북경의 왕빠 영업허가증은 30만원(한화 약 3,600만원)이었으나, 1달 사이에 50만원까지 폭등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은 100만원(한화 약 12500만원)에서 400만원(한화 약 5억원)까지 호가하는 곳도 있다. 투기에 의해 고평가된 왕빠의 거품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시장에 내놓은 북경의 한 왕빠를 예로 들면, 1년 전에 30만원(한화 약 3,700만원)에 영업허가증 및 기자재를 사들였다. 1년 간 약간의 증설을 통해 146대의 PC를 보유하고, 1달에 한화 약 1천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이 왕빠의 권리금은 현재 2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왕빠의 영업허가증이 투기대상이 된 원인은 무엇일까. 왕빠를 운영하고 있는 업주들은 “모두가 국가 정책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국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인터넷문화경영허가증’이 도입됐다.

이를 획득하지 못하면 왕빠를 개업하지 못하도록 돼있다. 왕빠를 주관하는 문화부에서는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연쇄점형식의 왕빠에 한해서만 신청을 받아주고 개인에게는 허가증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왕빠의 허가증이 희소자원이 되면서 투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현재는 허가증의 비준을 지방정부에서 담당하고 있어 허가증 비준 기준이 완화되면 또 한번 왕빠산업은 카오스 상태에 빠질 전망이다.

왕빠가 상장한다?
중국 문화부는 최근 왕빠 산업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벤처 자금을 끌어 들이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중이라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최근 또한 왕빠와 사이버 게임리그, 게임회사를 연계시킬 수 있도록, 과거의 관련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조정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올해 초, 문화부는 전국적으로 산재해있는 왕빠의 갯수, 투입자본, 면적, 서비스상황 등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왕빠의 증가세는 꾸준하나, 규모가 영세하고 불법경영 행위도 근절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유는 무얼까. 절대다수가 개인자본으로 이루어져 있어 약간의 위험에도 저항력을 잃어버리는 경쟁력의 약화가 주요 원인이었다.

또한 개인경영자의 인적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도 대표적인 이유에 속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고 왕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지난해 말부터 벤처 자금 운영자들을 정부에서 직접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벤처 캐피탈에서조차 왕빠의 현금 유동성과 기본적인 이익실현은 자신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전했다. 문화부에서 왕빠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의 책임자 ‘리웨이’는 “왕빠 산업에 벤처자금이 유입된다면 호텔 체인과 같은 형태로 왕빠도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벤처 자금은 왕빠 산업에 유입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정부의 세금 정책을 꼬집었다. 리웨이도 왕빠의 세금정책이 벤처 자금 유입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시인했다. 현재 왕빠의 세금은 3년 전부터 오락유흥산업으로 분류돼 가라오케 등의 유흥주점과 같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실제로 이 같은 상황을 정돈하기 위하여 올해 10월 28일부터 ‘왕빠산업촉진계획’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온라인게임, 영화, 음반 등의 산업을 한 고리로 묶어 왕빠 산업의 수익구조를 대폭 상승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발표했다.

세율, 왕빠의 발목을 잡다
최근 중국 재정부와 국가 세무총국의 규제에 의해 왕빠는 또 한번의 위기를 맞았다. 이에 따르면, 20%의 영업세와 수익에 따른 세금까지 합산할 경우, 전체 수익의 28%가 종합세로 납부될 수밖에 없다. 2003년 이전 정보서비스업의 세율인 5%에 비한다면 무려 6배에 달한다. 이에 대해 게임 관련 전문가들은 “▲2002년 11월 15일 공표된 ‘인터넷서비스제공영업장소관리조례’가 단 한번도 개정되지 않고 있다. ▲또한 조례 내용의 대부분이 청소년 보호와 왕빠의 위해성 규제에만 치중돼 있다. ▲시장의 주체인 왕빠 산업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결국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영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왕빠의 두 얼굴
왕빠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문화산업의 첨병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견과 청소년의 탈선 거점이라는 불명예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만큼 더 교묘한 수법으로 정상적인 영업행위를 벗어나고 있는 곳 역시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도박 프로그램과 프리서버 운영, 핵 프로그램의 판매로 불법수익을 창출하는 사례이다. 단순히 사이버머니를 생산해 내는 작업장은 오히려 정상적인 사업으로 인식할 정도로 보편화 돼있다.

컴퓨터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왕빠 업주와 결탁해 핵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업주와 일정부분의 수입을 나누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불법이라는 의식보다는 하나의 틈새시장처럼 일반화 돼있다. 프로게이머를 꿈꾸지만 현실의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게임 아바타를 육성시켜주거나, 사이버머니를 획득해 푼돈을 버는 예비 게이머들이 상주하는 곳, 가출한 청소년들이 밤을 새워 게임을 하는 곳도 왕빠이다. 중국 정부가 강력히 규제하는 도박에 대해서만은 왕빠 업주들도 몸을 사리지만 암암리에 검은 세력들과 연계돼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어, 크게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미성년자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영업시간도 오전 8시에서 24시까지로 규정해 놓았지만, 두꺼운 커튼으로 불빛을 가린 체 심야영업에 대한 단속을 피해가고 있다. 이에 북경과 장사에서는 지방정부가 영업시간 연장에 대한 제안을 내놓고 현재 시범적으로 운영하며 왕빠의 건전성 유도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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