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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식] 한국게임개발협의회「KGDA」회장

  • 소성렬
  • 입력 2003.01.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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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해 29살이다. 그는 “많은 삶을 산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나이도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자신의 나이는 스스로 지나온 삶인 만큼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스물아홉해를 살아오며, 많은 선택과 도전, 좌절, 극복의 시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 회장은 지난 75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항상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고, 욕심이 많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 유별난 끼는 어쩔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와 그림 그리기 등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각종 대회에서 수많은 상장을 휩쓸곤 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춘향전을 패러디한 연극 희곡을 직접 써서, 교실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기도 했다. 물론 주연도 그였다.

그런 그의 창작능력은 초등학교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가 게임의 재미에 빠져들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다. 당시만 해도 게임기는 패밀리(닌텐도의 패미콤이라고 불리던 게임기의 복제품)가 전부였다. 우연히 친구집에서 접한 패미콤에 어린 그는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그와 게임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패미콤의 인기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매주 쏟아져 나오는 게임덕분에 그의 게임 레벨은 상승했으나 반대로 학교 성적은 끝없이 추락했다.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해서도 시험기간이 되기를 기다렸을 정도로 게임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수업이 일찍 끝나 집에 가서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게임 사랑은 지칠 줄 몰랐다. 새벽에도 부모님 몰래 자신의 방에 TV를 갖다 놓고 밤새도록 게임을 즐기곤 했다. 집에서는 게임 때문에 자식의 인생을 망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겉으로는 싫어하시는 척 했지만 저를 끝까지 믿어 주셨어요. 저를 믿어주신 부모님이 계시기에 아마도 내가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무언가 창의적인 것에 몰두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현상은 그가 글짓기를 할 때나 포스터를 그릴 때 완전히 빠져 모든 주변상황을 잊어버리고 집중하게 되는 것을 말했다.

“주위가 하얗게 바뀌면서 나의 작품만이 보이는 그런 기분.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짜릿한 기분이었습니다. 창의적인 것을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는 소년이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게임 개발자가 되기를 꿈꾸던 그에게 학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은밀한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학도, 고등학교도 의미가 없으니 상고로 옮겨서 컴퓨터를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친구들의 동의를 이끌어낸 후 그는 대표로 담임선생님에게 의사를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의 반대로 상고로의 전학은 포기해야 했다. 대학을 진학해야 했다.

어느 과를 가야 할지를 무척 고민을 했다.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의류학과를 지원했다. 아무래도 의상에 필요한 그림을 그리다보면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학교에 원서를 넣으러 간 날, 그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의류학과는 남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장 만만해 보였던 미생물학과에 입학원서를 접수했다.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물론 면접 때는 미생물에 대한 관심과 앞으로의 비전을 교수님께 자랑스럽게 설명했죠.” 그는 지금도 대학교에 진학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대학 때도 회사 생활을 병행해 형편없는 학점을 기록했다.

그는 중, 고등학생들에게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는 이들에게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마치 중, 고등학교 때 게임 제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회사를 차려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꼭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게임 제작을 빨리 접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경험을 빨리 하면 할수록 그만큼 시간을 얻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것 외에도 중, 고등학교 때의 필수 지식과 교양들은 단순히 게임 제작 그 이상 가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 게임 개발사들이 개발자들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실력이 아닌 인성입니다. 따라서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인성 습득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그는 인천에서 꽤 큰 게임 매장에서 몇 년간 거래를 지속해왔다. 그것은 패미콤부터 시작해서 메가드라이브, 슈퍼패미컴, 세가 세턴, 플레이스테이션까지 지속됐다. 그는 학교 다닐 때도 주말이면 항상 그 매장에 상주했다.

그는 그곳에서 밥도 얻어먹고, 게임도 대신 팔아주는 등 일도 했다. 그는 대신 새로 나온 게임들을 무료로 즐겨본다든지 교환시 특전을 받는 등 여러 혜택을 받았다.

“항상 새로 나오는 모든 게임들을 즐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습니다. 주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지어는 신작 게임을 가장 먼저 접하기 위해, 용산까지 주인아저씨와 함께 이동했던 기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나의 중, 고등학교는 게임과 함께 하는 인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디다.”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게임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창작적인 능력을 무척 중요시했다. 그에게는 언젠가 게임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만이 아닌 분석하고, 연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습관은 지금 게임을 즐기고 있는 중, 고등학생들 중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들이라면 꼭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당시에 저는 여러 개의 노트를 만들어서 아이디어와 게임 용어, 그리고 기획에 대한 것들을 정리했었습니다. 캐릭터나 기타 게임 공략 및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스크랩해서 정리하는 것도 게임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수집을 무척 즐기는 편이다. 비싼 것들을 모으거나 오타쿠(매니아)적인 취미라기 보다는 그가 필요로 하는 자료들이나, 책, 영화, OVA, 음악 등을 모으고 있다. 그는 과거에 드래곤볼 카드나 영화 캘린더를 모았던 것도 다 가지고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그에게 책을 산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요즘도 시나리오, 미술, 전쟁 및 경영 관련 서적 등 개인적으로 접하지 못했던 지식을 높이기 위해 한 달에 몇 십 권씩의 책을 사고 있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다양함과 정보 취득의 손쉬움에 불과합니다. 책의 방대함이나 정보의 깊이를 아직 인터넷이 따라올 수는 없습니다. 만약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있다면 보다 많은 책을 읽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그는 다양한 방면의 지식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다.||(현) 한국게임개발자협의회(KGDA)회장.
(현) 서울 디지틀 대학(SDU) 멀티미디어학부 초빙교수.
(현) 그래픽스 라이브 테크니컬 리포터.
(현) (주) 트리거 소프트 기획 팀장.
1994년 부터 트리거 소프트 창립멤버로 게임개발을 시작했으며, 그간 10개의 게임 타이틀을 제작해왔다.

사진=유영민기자|youmin20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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