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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소프트맥스」사장

  • 지봉철
  • 입력 2002.12.3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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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란 단어는 사실 정영희 사장에게는 그동안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국산 PC게임 최초로 10만장 이상 판매된 게임인 ‘창세기전’으로 거칠 것 없는 성공신화를 이룩한 정 사장이다.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은 지난 2000년 ‘창세기전3 파트Ⅱ’를 마지막으로 개발을 중단했으나‘창세기전’시리즈는 95년부터 모두 6개의 타이틀이 출시된 국산 게임의 대표작으로 현재 수출을 제외한 내수 누적 판매량만 80만장에 달하는 국내 게임시장을 대표하는 게임 콘텐츠다. 그런 정 사장이 전혀 당황하지 않고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그동안 많은 시달림을 받았던 듯 싶다.||정 사장의 마음고생은 바로 개발분위기가 침체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제 개인적으로는 ‘마그나카르타’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리콜문제가 있었긴 했지만 그걸 계기로 콘솔 게임시장의 진입을 결정하게 됐고 온라인게임 사업도 집중적으로 육성할 수 있었습니다. ‘마그나카르타’ 문제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마그나카르타’. 아직도 정 사장의 머리속엔 ‘마그나카르타’가 자리잡고 있다. 1년내내 정 사장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게임이다. 2002년 신년벽두부터 게임업계를 강타한 소식은 ‘마그나카르타’였다. 정 사장이 직접 사과문까지 작성하고 리콜소동까지 벌인 PC게임 ‘마그나카르타’는 ‘창세기전’으로 PC게임의 명가로 자리매김한 소프트맥스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유통사인 위자드소프트와도 분쟁이 일어나며 소프트맥스를 한동안 침체에 빠뜨린 게임이기도 하다.

“회사의 책임은 사장이 지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극복하는 과정이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새로운 결과로 말해줘야 하는데 결과물들은 나오지 않고 답답했습니다. 2002년도는 수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성이 좋은 개발자들을 많이 만난것도 행운이죠. 직원들이 잘 견뎌줬어요.”

창업 초기부터 철저하게 개발과 경영을 분리해 왔던 소프트맥스에서 회사 운영은 정영희 사장의 혼자 몫이다. 혼자라는 것이 외롭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 사장이다. 그러나 게임개발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마디로 경영철학이다. 정 사장의 이 원칙은 소프트맥스가 개발자들을 스타로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조영기, 최연규, 전석환 등은 국내 아마추어 게임개발자들의 우상이다. 소프트맥스의 최고의 자산은 바로 이들인 셈이다. 정 사장의 경영철학이 키워낸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없었던 93년, 정 사장은 7년여를 근무하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게임 소프트웨어를 전문업체 갑인물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해 보고 싶은 욕심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몸담는 동안 게임 강국이라는 일본을 오가며 국내 게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채 1년도 못돼 부도를 맞게 됐고, 정 사장은 자신의 퇴직금까지 털어 가면서 회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세상은 그녀의 생각대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정 사장의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오히려 그녀는 창업이라는 정공법으로 2차 도전에 나서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소프트맥스다.

“해마다 일이 터져요. 처음엔 투자문제로 그다음엔 코스닥 그리고 ‘마그나카르타’. 지금은 테일즈위버에 매달리고 있죠. 신경쓸 일이 없어져야 결혼도 생각해 보지 않겠어요?”

해마다 신경쓸 일을 만든건 다름아닌 정 사장 스스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사장은 아직 싱글을 고집하고 있다. 외로울법도 한데 결혼엔 아직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정 사장에게 외롭다는 사실을 잊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외로울때마다 그리고 힘들때마다 도와주는 힘이 있다.

“‘테일즈위버’를 오픈하면서 사실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오픈하고 단 3일만에 동시접속자수가 5만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1년이상 걸리는 일을 단 이틀만에 해낸 거죠. 아직 소프트맥스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발자들이 소프트맥스의 내부역량이라면 두터운 팬층은 소프트맥스의 외부역량이다. 소프트맥스가 그동안 PC 게임업체 개발사로서 1위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힘이기도 하다. 소프트맥스 게임에 굶주려온 팬들이 ‘테일즈위버’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년 넘게 제대로 된 소프트맥스의 게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테일즈위버’는 소프트맥스의 갈증을 시원스럽게 풀어주고 있다. 국내 초유의 대기록이다. 동시접속자 5만명을 채워 유료화로 전환하고 있는 다른 게임업체들과 비교해보면 이 수치가 가진 의미는 더욱 크다. 당장 유료로 전환해도 월 매출 20억원은 거뜬하다.

“올해 회사사정으로 제작발표회를 갖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내년에는 꼭 해야죠. 게임이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게임회사의 노력이 절대적입니다. 게이머들에게 보상과 책임을 갖게 해야하죠. 단 돈 100원을 벌어도 일부를 게이머들에게 환원해야 합니다.”

소프트맥스가 광범위한 팬층을 확보한 것은 환원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처음으로 고급 케이스에 게임과 화보집을 넣은 것도 매년 8월 중순 대형전시관을 빌려 제품발표회를 가진 것도 소프트맥스다. 단 한번도 자사 게임을 저가 시장에 내 놓은 적이 없는 것도 소프트맥스가 유일무이하다. 소프트맥스를 믿고 정품 게임을 구입한 게이머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다. ||게이머들은 국내에서 가장 큰 브랜드인지도를 지닌 ‘창세기전’에 대한 향수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 게이머들은 계속해서 창세기전의 리메이크를 요구하고 있다. 소프트맥스가 ‘창세기전’을 종결한 이유는 단일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창세기전’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온라인게임과 콘솔게임의 집중할 생각입니다. 콘솔게임은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PC방 정책에 따라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동안 소프트맥스가 꾸준하게 쌓아온 노하우를 접목시킬 공간이기도 합니다. ‘테일즈위버’와 ‘포립’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게임분야도 꾸준하게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테일즈위버’로 다시 한번 게임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소프트맥스와 정사장. ‘테일즈위버’의 성공은 개발자의 코디네이터를 자처하는 정사장의 경영마인드와 좋은 게임을 만들려는 개발자들의 자존심 그리고 게이머들과의 신뢰를 소중하게 여기는 소프트맥스의 기업이념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소프트맥스는 지금까지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신화창조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1년동안 지옥과 천국을 모두 경험한 거 같습니다. 그러나 게임개발은 마라톤과 같아서 굴곡이 있게 마련이죠.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유행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소프트맥스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계획입니다.” ||▪출생지: 경상북도 | ▪종 교: 천주교
▪취 미: 운동, 등산 | ▪혈액형: AB형
▪1985 성신여자대학교 경영학 학사
▪1993. 소프트맥스 설립, 대표이사사장
▪1985.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근무
▪1993. 갑인물산 근무

[ 상 훈 ]
▪1996 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 연말대상(게임/오락부문-창세기전)
▪1998 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 연말대상(우수상-서풍의 광시곡)
▪1998 이달의 벤처기업인상 중소기업청
▪1999 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 7월상(멀티미디어콘텐츠부문-템페스트)
▪1999 대통령표창 SW산업발전유공자포상
▪2001 대한민국 게임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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