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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한빛소프트 사장

  • 소성렬
  • 입력 2002.09.2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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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지상에 한빛소프트에 대한 기사가 빠지지 않고 실리고 있다. 매출신장에 대한 얘기가 주목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한빛은 지난해 8백30억의 매출을 올렸다. 이 액수는 4백34억원의 매출을 올린 전년도에 비해 91% 증가한 수치다. 경상이익은 2백억원으로 2년전에 비해 69% 증가했다.
이는 동종 벤처 업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초고속 성장. 최근 벤처기업들이 연일 넘어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상하기 힘든 성공이다. 사실 한빛소프트는 불황을 모르고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빛을 사시적인 시선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도대체 김사장은 어떻게 한빛을 단 시일 내에 우량기업으로 만들었는 지가 의아해 지기 때문이다.
수학 잘하는 7남매중 넷째
“혹 들어보셨어요? 제 고향은 전북 완주 화산입니다. 잘 모르더라구요. 전주는 잘 아는데 완주는 별로 유명한게 없어서인지 완주가 어디에 있냐 그래요. 화산은 더더욱 모르고요”
김 사장은 완주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서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완주에서 자랐다. “춘산 초등학교라고 지금도 있는데 한 학년에 반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같이 입학하면 6년동안 같은 반이 돼 공부를 하는 거죠.”
유년기 시절을 묻자 마치 지난 과거를 회상하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저희 집 식구가 많았어요. 7남매거든요. 위로 형이 둘, 누나 한명 그리고 밑으로 여동생이 3명.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거 같지만 그때는 전체적으로 그랬어요. 어머니가 고생 많이 하셨죠.”
김사장은 공부를 무척 잘했다. 그중에서도 수학을 제일 잘했다. 김사장 말에 의하면 식구들 모두 수학 실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막내 동생은 그래서 지금 수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아이들에게 과외 선생 노릇을 했어요. 공부가 좀 안 되는 또래 아이들에게 방과후에 선생님이 돼 특별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중학교는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화산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김사장을 워낙 예뻐하시던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받은 충격은 그가 원했던 전주고 진학을 가로막았다. “전주고가 당시 최고 명문학교로 꼽힐 때였어요. 그런데 큰아버지 돌아가시고 부터 공부가 손에 안잡히더라구요.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뭐 한참 감수성 예민한 시기여서 그랬나봐요. 결과는 전주고 시험에 떨어졌어요.”
이후 김사장은 이리로 올라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했다. 재수생활 1년은 김사장에게 많은걸 생각하게 했다. 상황을 탓하기 전에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굳이 전주고에 들어갈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이리에 있는 이리고에 진학을 했다. 재수생활하면서 만났던 친구들을 아직도 만나고 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재수생활 하면서 만났던 친구들을 아직도 만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제일 편해요.”
대학은 광운대학교 전자계산학과에 81년 진학을 했다. 그가 원했던 학과였기 때문에 대학생활은 즐거웠다. 학교를 졸업한 뒤 LG소프트(금성소프트웨어)에 입사를 했다. 올림픽이 개최됐던 88년이었다. 입사후 김사장이 엔지니어로 담당했던 업무는 OA개발팀에서 전자출판쪽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92년부터 LG소프트가 게임, 교육용 사업을 시작하면서였다. 엔지니어로 성공하기보다는 사업가로 성공하고 싶던 그에게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발족했을 당시 명칭은 ‘LG소프트웨어 패키지 사업부’. 자원해서 자리를 옮겻다. 김사장의 역량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98년 12월까지 6년간 일에 매진했다. 사업에 자신이 생기기 시작한 건 97년쯤이었다. LG소프트를 나와 99년 1월 한빛소프트를 창업한 것도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는 모름지기 이윤을 추구한 뒤 그 이윤을 골고루 배분하는 것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주와 고객, 사원이 모두 만족하는 회사가 되기 위한 조건이다. 때문에 한빛은 사원복지제도를 그 어느 회사보다 신경 쓰고 있다. 사원들이 신바람이 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원들에게 주택자금 융자를 1천만원까지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이나 콘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은 김사장이 사원들을 얼마만큼 생각해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주주들에게도 최대한 노력해 이윤을 나누고자 한다.||한빛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조직생활 문화에 적응이 빠른 사람.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눌 때 비전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원해요. 자기 일에 만족해하며 3∼5년 뒤의 미래 설계가 돼 있는 사람이면 언제든지 한빛 식구로 맞이할 생각을 하고 있죠.

벤처기업들이 최근 최악의 사태를 맡고 있다.
좋은 아이템만 있다고 사업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또 나의 가치를 인정해 투자해주는 분들에게 피해를 줘서도 안되죠. 최근 벤처업계가 마치 도미노현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무너지고 있는데 투명경영보다는 단 시간 내에 한몫 하자는 풍조가 만연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벤처기업인들 중에는 내실 있는 경영을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부 벤처기업 CEO들이 무슨 무슨 게이트니 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열심히 하는 벤처인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 줬음 좋겠네요.

지난 99년 창업이래 가장 큰 시련이 있었다면?
코스닥 심사에서 떨어졌던 날이라고 봐요. 지난해 8월 16일이었어요. 심사에서 탈락한 이유가 개발능력을 증명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보류도 아니고 재심을 받으라고 했으니 앞길이 막막했죠.

가장 기뻤건 순간은 언제였나.
딱히 코스닥 진입을 하기 위해 한빛소프트를 창업한 것은 아니지만, 코스닥 시장에 상장 됐던 1월 10일을 들고 싶습니다. 상장기업으로서의 가치도 가치지만 외부에서 회사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이점은 아쉽다 생각하는 점은?
어느 업체가 어떤 상품에 대한 계약을 했으면 그 결과에 따라 박수를 치는 자세를 통 볼 수 없어요. 분명히 외국의 어떤 업체와 계약이 끝났는데 국내 다른 개발사가 또 그 회사를 찾아가 더 많은 돈을 주겠다며 계약 파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어요. 상도를 제대로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살 깍아먹기식 경쟁은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는 데도 말이죠.

전문적인 경영 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데…
LG에서 8년간 근무를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경영 수업을 받은 적은 없죠. 그러나 한빛에는 훈련된 인재들이 많습니다. 저 또한 좀더 전문적인 경영인이 되기 위해 경희대학교 국제 법무대학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등을 수료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차후에도 더욱 배워 나갈 예정입니다.

사업 외에 좋아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고 싶어도 솔직히 시간이 없어 못해요. 최근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필드에 몇 번 나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주일엔 가족과 함께 교회를 찾습니다.

한빛의 최종 목표는?
게임을 중심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국내에는 게임관련 퍼블리셔가 없습니다. 퍼블리셔가 갖는 의미 그대로 발굴, 육성, 제휴 등을 통해 확보된 게임 콘텐츠를 다양한 플랫폼과 방식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업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펴 오는 2005년까지 아시아 넘버원이 되는 것이 한빛의 최종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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