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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유저 100명에게 물었다] 중원을 장악하라, 미드필더 BEST5

  • 김상현 기자 AAA@kyunghyang.com
  • 입력 2006.06.0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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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 상암 경기장이 다시 한번 붉은 물결로 요동쳤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시작으로 2006 독일월드컵을 향한 최종점검에 돌입했다. 그간 고질적으로 지목됐던 점은 미드필더, ‘중원을 장악해야 골문이 열린다’는 전문가들의 중론 속에 국가대표 미드필더들의 부진은 2006 독일월드컵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박지성이라는 걸출한 플레이메이커가 있지만, 체력상태와 팀원간의 호흡이 미흡한 것이 사실.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원의 사령관 지단을 보유한 프랑스와 일전에서 중앙 미드필더들의 압박이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컨디션과 팀웍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최대의 과제. 그렇다면, 스타급 미드필더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피파2006’ 유저들을 대상으로 최고의 미드필더를 뽑아봤다.

■ 어떻게 선정했나?
지난 5월 22일부터 5월 24일, 3일 간에 걸쳐 피파 유저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피파2006’을 기준으로 플레이 시간이 30시간이 넘는 유저를 대상으로 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조사했다. 가장 득표를 많이 받은 선수를 기준으로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게임을 중심으로 조사했으며 미드필더의 범주가 큰 만큼, 플레이메이커에 제한을 뒀음을 밝힌다.

≫ 플레이 메이커 BEST 5
+ 1위 : 지네딘 지단(42명) - 42%
+ 2위 : 루이 코스타(18명) - 18%
+ 3위 : 스티븐 제라드(12명) - 12%
+ 4위 : 박지성(10명) - 10%
+ 5위 :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8명) - 8%

≫ 플레이 메이커란?
미드필드에서 전체 게임을 조율하며 운영해가는 선수. 플레이메이커(play maker)의 사전적인 의미는 축구나 농구 또는 하키등에서 득점기회를 제공하는 능력을 보유한 선수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대축구에서 이야기하는 플레이메이커의 의미는 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현대축구는 특정한 개인의 능력에 의해 경기력이 좌우되었던 과거의 축구에 비해, 보다 팀플레이에 의한 부분에 주안을 두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현대축구에서 말하는 플레이메이커란 자기 팀의 경기전반을 조율하고 팀플레이를 균형감있게 리드하는 선수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공수의 연결고리로써의 역할과 플레이의 완급조절, 효율적인 볼배급이 가능한 중앙의 미드필더들에게 이런 호칭을 부여하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즉, 플레이메이커란 특정 포지션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라 단지 역할상의 분류이다.

1위 지네딘 지단
아트사커의 선봉자, 현존하는 최고의 미드필더이자 플레이메이커, 지네딘 지단이 42명의 지지를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중거리 슈팅, 드리블 능력, 프리킥 모두 상위권으로 프랑스 팀을 고르는 이유로 ‘지단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응답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과 같은 조로 경계해야할 선수 1호로 뽑히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풋볼 마스터’ 지네딘 지단은 90분내내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 창의적인 개인기, 기발한 패스, 감각적인 시야를 두루 겸비한 이 시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다. 기복 없는 꾸준함의 대명사이기도 하며, 특히 큰 경기에서 거대한 재능을 발휘하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프랑스 명문 보르도의 젊은 영웅으로 떠오른 이후, 지단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1996년 여름에 이탈리아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함께 유벤투스의 96/97, 97/98 시즌 스쿠데토 2연패를 주도했고, 00/01 시즌 세리에A 최우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됐으며, 2001년 여름에는 역대 최고액 이적료(64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단연 화제의 중심에 놓여졌다.
마드리드에서도 지단은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01/02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성공시킨 역사적인 발리슛 득점을 비롯, 수 많은 아름다운 골과 어시스트, 명장면들을 팬들의 가슴 속에 아로새긴 까닭이다. 2003년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2006 독일월드컵을 끝으로 그의 화려한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의 모습은 축구팬들에게 영원히 남을 것이다.

2위 마누엘 루이 코스타
2위는 18표를 획득한 마누엘 루이 코스타가 차지했다. 포르투칼 대표팀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일품이라고 유저들은 입 모은다. 포르투갈이 배출한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패스의 달인’ 루이 코스타는 미드필더임에도 득점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또한 넓은 시야, 정확한 패싱력, 안정된 볼 컨트롤, 명석한 두뇌, 뛰어난 태크닉을 보유하고 있다. 포르투칼의 축구 영웅 에우제비우는 이런 루이 코스타를 가리켜 “포르투갈은 루이 코스타의 눈과 발에서 최고의 플레이가 시작된다”라고 극찬했을 정도. 자국에서 개최된 1991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포르투갈을 우승으로 이끌며 주목받기 시작한 루이 코스타는 이후 3시즌 동안 벤피카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 클럽에 포르투갈 컵과 리그 우승컵을 안기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러한 활약으로 1993년 3월에 펼쳐진 스위스와의 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가지며 본격적으로 대표팀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1994년 여름에는 750만 달러의 이적료에 피오렌티나에 입단하였으며, 피오렌티나 입단은 그의 실력과 명성을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된다. 피오렌티나에서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함께 클럽의 공격을 이끈 루이 코스타는 피오렌티나가 이탈리아의 강팀 반열에 오르는데 크게 일조하였으며, 바티스투타를 비롯한 팀 동료들의 득점을 도움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골을 성공시키기도 하며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함께 클럽을 이끌었던 바티스투타가 클럽의 재정난과 선수 본인의 이상을 위해 홀연 AS 로마로 떠나자, 루이 코스타도 그 이듬해에 AC 밀란에 입단하며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떠나게 되었다. 루이 코스타는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하는 동안 클럽에 두 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안겼다.

3위 스티븐 제라드
3위는 영국의 스티븐 제라드가 뽑혔다. 타 플레이메이커보다 월등한 슈팅 능력을 가지고 있어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도 뛰어나다는 것이 유저들의 중론. 제라드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정신력과 자신감으로 팀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리버풀의 캡틴과 잉글랜드의 차기 주장이라 불리우는 스티븐 제라드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에 지칠줄 모르는 체력 ,뛰어난 킥 능력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지구촌 축구팬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제라드가 부상으로 2002 FIFA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한 것은 본인에게나 잉글랜드에게 모두 큰 실망이었다. 그는 뭔헨에서 열린 독일과의 예선전에서 한 골을 터뜨려 잉글랜드의 5-1 대승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제라드는 2000년 5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잉글랜드 데뷔전을 치렀고 UEFA 유로 2000 대표팀에 발탁됐으며,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할 정도로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다.아마 2002월드컵때 제라드가 출장했더라면 우승도 그리 멀게만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예선 7경기에 출장한 4명의 잉글랜드 선수들 중 1명이었던 제라드는 잉글랜드 미드필드진의 핵심 요원으로서 포르투갈 본선행을 견인했다. 프랑스전에서 결정적인 골을 허용한 원흉으로 지목됐던 제라드는 스위스전에서 골을 터뜨려 실수를 만회했고 크로아티아전에서도 맹활약했으나 잉글랜드는 개최국 포르투갈에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많은 이들은 그가 장차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차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4위 박지성
4위는 한국 프리미어리그 1호인 박지성 선수가 차지했다. 드리블, 패스, 모두 상위권으로 슈팅력이 약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1981년 서울 출생.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공격, 수비 모두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축구를 시작한 박지성은 명지대에 입학한 후 2000년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경기에 데뷔하였으며, 2000년 6월 대학을 휴학하고 일본 프로리그팀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했다. 최연소 J리그 진출 한국선수였던 그는 주전으로 맹활약하며 2001년에 2부리그로 전락했던 팀을 2002년에는 1부리그로 끌어올렸다.

박지성은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함으로써 차세대 축구스타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02년 5월21일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헤딩 동점골을 성공시킨데 이어 5월26일 세계랭킹 1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도 왼발로 동점골을 뽑아내 이목을 끈 그는 6월14일 월드컵 D조 예선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한국의 월드컵 4강진출의 밑거름이 됐다. 성실함과 재능으로 월드컵 당시 한국팀 감독이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그는 2002년을 마지막으로 J리그를 떠나, 2003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에인트호벤에 입단하였다. 현재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주전 윙백으로 ‘신형엔진’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국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5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5위는 아르헨티나의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가 차지했다. 베론은 파르마에서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을 품에 안은 바 있으며, 라치오로 옮긴 후에는 스쿠데토와 유러피언 수퍼컵을 차지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부동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이미 50회가 넘는 출장 경력을 지니고 있다. 프리미어쉽 역사상 최고액 이적료(2810만 파운드)를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성했으나, 썩 만족스럽지 못한 두 시즌을 보낸 이후 첼시로 팀을 옮겼다. 베론이 얼마나 빨리 새로운 팀컬러와 잉글랜드 리그의 빠른 템포에 적응해 나갈 수 있을지 여부는 ‘새로운 첼시’의 최대 관건이다. 하지만 첼시에서도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한 베론은 결국 2004년 여름 인터 밀란으로 임대되며 자신이 최고의 활약을 펼쳐보인 이탈리아 무대에서 다시금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 라몬이 지녔던 ‘마녀’를 물려받아 ‘작은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운다. 아버지 라몬은 마술적인 골감각과 코의 생김새 때문에 그러한 별명을 얻었고, 베론 역시 아버지의 재능과 감각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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