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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K, 개발팀 철수 왜?

  • 윤영진 기자 angpang@kyunghyang.com
  • 입력 2006.07.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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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SonyComputerEntertainmentKorea, 이하 SCEK)의 비상(飛上)에 제동이 걸릴 조짐이다. SCEK측은 지난 6월 21일 ‘글로레이스: 판타스틱 카니발(Glorace: Fantastic Carnival, 이하 글로레이스)’을 개발했던 콘텐츠 개발팀 전원(13명의 개발자 외 4명의 인턴사원 포함)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함과 동시에, 오는 7월 31일자로 국내 개발팀을 철수시킨다는 계획이 본지를 통해 단독 확인됐다. 이번 정리해고와 관련해 SCEK측과 개발자들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근로기준법에 의거한 법률적 해석 차원에서도 정리해고가 아닌 부당해고인 것으로 판명됐다. 내부적인 진통과 함께 난항이 예상되는 SCEK의 향방. 그 진실을 파헤쳐봤다.

정리해고가 아닌 부당해고
SCEK의 게임 개발을 전담해왔던 콘텐츠 그룹 철수는 겉으로나마 합법적인 정리해고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에 가깝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정리해고는 분명 종업원을 해고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제도이다. 정리해고의 대표적인 사유로는 ▲경영상의 악화로 기업이 존폐위기에 처하거나 ▲해당 인원이 일할 수 있는 여타의 부서가 존재하지 않거나(여타의 부서는 존재하나, 해당 부서에서 일할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하거나) ▲각 팀당 몇 명씩 차출하는 형태에 한한다. 하지만 SCEK는 국내에 첫 발을 내딛은 2002년을 제외한다면, 2003년을 기점으로 흑자 전환했다.

따라서 경영상의 악화로는 볼 수 없다. 또한 SCEK의 경우, 철수 예정인 콘텐츠 그룹과 넷스팟 등을 개발했던 테크놀로지 그룹(총 10명), 한글화를 목적으로 한 로컬라이징 그룹(총 7명)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에 정리해고 될 운명에 처한 개발자들은 이 두 곳의 부서에서 충분히 일할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아무런 제의를 받지 못했다. 더불어 구체적인 해고 사유 역시 통보받은 바가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2번째 요건에도 속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각 부서별 일정 인원이 아닌, 한 부서의 부서장 이하, 팀원 전체를 해고하는 것은 분명한 부당해고 사유이다. 이 밖에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정리해고의 경우, 해고 회피를 위한 사업주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발자 중 그 누구도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대목 역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이뿐이 아니다. 대상자의 선정 기준은 물론, 노조 또는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 규정에도 어긋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SCEK측 관계자는 “처음 개발팀을 구축함에 있어, 계약서에도 적혀있듯 개발팀을 언제든 철수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며 “법률적으로도 전혀 하자가 없음을 이미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법인 전문가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그는 근로계약서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면, 이는 불합리한 불평등 계약에 속하므로, 무효 가능성이 적지 않음을 시사했다. 더욱이 콘텐츠 그룹 개발자들은 계약서에서 이 같은 내용이 명시된 부분을 본 기억이 없다며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콘텐츠 그룹에 속한 개발팀 전원은 SCEK측에서 요청한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어, 근 시일 내 전원 해고 통지서를 받게 될 전망이다.

개발자 목숨은 파리 목숨
이번 해고와 관련해 SCEK측 콘텐츠 그룹 개발팀 전원은 구체적인 사유를 통보받지 못했다. SCEK측이 <경향게임스>에 통보한 ‘글로레이스’의 판매 부진이 해고 사유의 유일한 답변이다. 하지만 ‘글로레이스’가 발매된 것은 지난 해 12월. 이를 해고 사유로 삼기에는 설득력이 적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콘텐츠 그룹의 한 관계자는 “‘글로레이스’는 소니 본사와의 여러 문제로 인해 기술적으로 구현이 안 된 부분이 많다”며 “이를 개발자들만의 잘못으로 규정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피력했다. 이들은 최근까지 국내에 특화된 PSP버전 2D롤플레잉 게임과 일본 시장을 겨냥한 3D액션 게임을 개발해왔다.

이미 게임 전반에 걸쳐 뼈대 작업이 상당부분 완성된 단계로, 근 시일 내 상품화할 수 있는 상태였다. 게임 콘텐츠의 기획 단계도 아닌, 이미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과정에서의 해고라는 점에서, ‘판매 부진’은 해고를 위한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 다른 개발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적게는 8~9년, 많게는 10년 차 이상의 개발자들조차 파리 목숨마냥 생각하는 SCEK의 기업윤리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대처할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고와 관련해 SCEK측은 현재까지 구체적인 보상 계획조차 밝히지 않고 있어,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실익 앞에 윤리는 없다
이번 해고에 앞서, SCEK는 불과 1개월 사이에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콘텐츠 그룹의 관계자는 “해고 사유에 대해 직접적인 사유를 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로젝트에 대한 비전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개발자들에게 심어줬던 SCEK”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두원공업대학교 게임학과 송현주 교수는 “급작스럽게 반대 입장을 펼쳤다면 개발자들을 무시한 처사를 넘어, 분명 다른 이유가 숨어 있을 것”이라며 “그 어떤 이유일지라도 중소 개발사도 아닌 SCEK가 기본적인 절차조차 이행치 않는 것은 이해키 힘든 일”이라고 전했다.

SCEK 관계자 역시 한국 지사의 의지라기보다는 일본 본사의 요청에 따른 것임을 시인했다. 그는 이어 “자체 게임 개발시 개발 기간이나 비용에 비해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뿐더러, 1~2개의 게임 타이틀로 한국 시장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이보다는 한국만의 독자적인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일본 포게이머의 김동욱 기자는 “기업은 분명 이윤 추구가 목적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나, 일본의 기업 풍토상 종신 고용이 기본임을 상기할 때, 이해키 힘든 일”이라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 같은 SCEK의 처사는 부당해고와 관련된 위법성 여부에 앞서,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존재했다.

게임 전문가 홍성민씨는 “이로 인해 기업 이미지 추락이나 차기 타이틀의 개발비용 회수 등 SCEK측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며 “개발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나, 체질 개선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기업 윤리와 실익. 이 두 가지 토끼 중 실익을 앞세운 SCEK의 기업 이미지는 당분간 계속해서 추락할 전망이다.

체질 개선을 위한 희생양
현재 SCEK의 공식 홈페이지(www.scek.co.kr)에는 현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인력 충원 공지가 올라와 있다. 개발팀 철수와는 상반된 인력 충원 계획. 이에 대해 SCEK측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도 성공 가능성은 적고, 많은 비용이 드는 분야보다는 내실 경영을 꾀하는 것이 기업은 생리”라며 “PS3가 정식 발매되기 전까지 온라인에 특화된 PS3개발에 총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내실 경영을 꾀하는 것이 SCEK의 향후 계획”이라고 전했다. 결국 PS3콘텐츠 이용 서비스를 목표로 한 ‘체질 개선’이라는 미명 아래, ‘판매 부진’이라는 이유로 17명의 개발자들은 전원 해고될 운명에 처했다.

더 이상 SCEK측에서 개발한 국산 타이틀을 만나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앞서, 그토록 쉽사리 버림받는 국내 콘솔 시장의 풍토. 지난 2002년 2월 22일 SCEK의 공식 발족과 함께 강조해왔던 ‘콘솔 시장 육성’에의 약속은 이미 퇴색의 기운이 역력하다. 자체 게임 개발보다는 콘텐츠 이용 서비스로 선회한 SCEK의 향후 전략. 이 사이 개발자들은 또한번 희생양으로 전락한 것이다. 국내 콘솔 시장에는 아직도 7월이라는 시간이 무색할만큼 차디 찬 겨울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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